
[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비만 치료제 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GLP-1 계열 신약까지 가세하며 처방 경쟁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하지만 이들의 마케팅 이면을 들여다보면, 진료실의 의사들과 환자들은 늘 해묵은 딜레마와 마주한다. 바로 국내 의학계의 진단 기준과 보건당국의 의약품 허가 기준 사이에 '구조적 괴리'다.
이번 한미약품의 '에페(에페글레나타이드)' 출시 국면에서도 이 엇박자는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제약사는 대외적으로 철저한 준법 경영과 안전 사용 가이드를 외치며 선을 긋고 있지만, 막상 일선 마케팅 현장에서는 한국인의 신체 특성에 맞춘 '1단계 비만(BMI 25~30)' 구간의 유효성을 내세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나라 비만학회가 정한 공식 진단 기준은 'BMI 25 이상'인데, 식약처의 의약품 허가 잣대는 여전히 글로벌 기준인 'BMI 30 이상(또는 동반질환이 있는 BMI 27 이상)'에 묶여 있다.
아시아인·한국인은 서구권에 비해 체지방률이나 만성질환 위험도가 낮지 않아 BMI 25부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임상 현장의 목소리다. 하지만 제약사는 마케팅에서 이를 파고들고, 진료실의 의사들은 '치료는 해야 하는데 허가 기준은 높고' 사이에서 줄타기를 강요받는다.
사실 이 같은 '기준의 덫'은 비단 비만 치료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항암제부터 희귀질환 치료제, 만성질환 스페셜티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국내 보건의료 현장 곳곳에는 글로벌 스탠다드나 낡은 규제 잣대에 발목이 잡혀 '실질적인 임상 현장의 필요성'을 외면당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임상 현장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환자들의 질병 양상도 진화하는데, 규제와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틀이나 일률적인 글로벌 기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신약이 출시될 때마다 마케팅과 규제 사이의 불협화음이 반복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혼선을 떠안는 일선 의료진과 환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보건당국과 제약업계, 그리고 의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나서야 한다. 마케팅 공방이나 소모적인 오프라벨 논란을 탓하기에 앞서, 한국인 환자의 질병 특성과 진료 현장의 처방 현실을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는 합리적인 가이드라인과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진료실의 의사가 떳떳하게 환자를 살피고, 혁신 신약의 가치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기준의 빗장'을 현실에 맞게 고쳐 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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