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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것과 지속하는 것

가톨릭 관동의대 2학년 배지섭
발행날짜: 2026-10-1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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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관동대학교 본과 2학년 배지섭

버티는 것과 지속하는 것 사이에서

얼마 전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목이 조금 칼칼한 정도였다. 늘 그렇듯 따뜻한 물 몇 잔이면 지나가리라 생각했고, 약국에 들르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았다. 이미 정해져 있는 일정이 있었고, 고작 감기 따위에 하루를 내주고 싶지 않았다. 오기였다.

어렸을 때 나는 환절기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였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달라졌다. 코로나 시절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다닌 탓인지, 언제부턴가 비염도 감기도 부쩍 뜸해졌다. 몇 년 동안 제대로 앓아본 기억이 없으니 나도 모르게 믿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 내 몸에도 맷집이란 게 생겼다고.

결과는 뻔했다. 버티던 감기는 며칠 사이 기침으로, 기침은 몸살로 번졌고, 추석 당일에는 내내 이불 속에서 기침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조금 일찍 쉬었더라면 사흘이면 끝났을 일을,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린 덕에 연휴를 반납한 셈이다. 오기 끝에 남은 것은 건강과 시간을 잃었다는 사실 하나였다.

맷집이라는 착각

이불 속에서 기침을 하며 생각해 보니, 나는 애초에 맷집을 오해하고 있었다. 마스크 덕에 감기에 덜 걸렸다는 것은 몸이 강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덜 맞았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싸움을 운 좋게 피해 간 기간을 싸움에서 이긴 기록으로 착각한 것이다.

더 근본적인 착각도 있었다. 나는 참을성과 맷집을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둘은 전혀 다르다. 참을성은 감정이나 욕구를 억누르고 버티는 '내적 통제'에 가깝고, 맷집은 실제로 충격을 흡수하는 내구성에 가깝다. 감기는 내 참을성과 상관없이 제 갈 길을 갔다. 내가 아무리 외면해도 바이러스는 증식했고 염증은 번졌다. 참는다고 덜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픈 것을 늦게 알아챌 뿐이었다.

호흡기 통합교육을 이수하며 새삼 흥미로웠던 사실 중 하나는 기침이 방어 반사라는 점이다. 괴롭고 성가신 기침은 몸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보면 증상은 적이 아니라 몸이 "지금 여기 문제가 있다"고 보내는 편지다. 그런데 나는 그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서랍에 넣었다. 목이 칼칼하다는 첫 번째 편지, 기침이 잦아진다는 두 번째 편지, 몸이 무겁다는 세 번째 편지를 모두 미뤄 두었다가, 결국 몸살과 객담이라는 등기우편을 받고서야 몸져누웠다.

몸은 어느 선까지는 멀쩡해 보이다가 그 선을 넘는 순간 한꺼번에 무너진다. 문제는 그 임계점이 넘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조금 더 버틸 수 있다고 믿는다. 어제도 버텼으니 오늘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효율의 모순

내가 버틴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면, 그 중심에는 효율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하루를 쉬면 하루가 밀린다. 쉬는 시간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니 최대한 버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계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하루의 휴식을 아끼려다 연휴 전체를 잃었다.

하지만 효율 계산만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그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곧 노력의 양이라는 오랜 믿음. 목이 칼칼한 날에도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한 것은, 쉬는 하루가 곧 뒤처지는 하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이런 믿음이 유독 강한 곳이다. 아파도 출근하고, 열이 나도 당직을 서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버티는 것을 책임감과 헌신으로 칭송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동료에게 짐을 떠넘기는 사람이 될까 두려워 다들 괜찮은 얼굴로 버틴다. 그러나 감기에 걸린 의사가 기침을 참으며 진료실을 지키는 모습은 헌신처럼 보이지만, 실은 면역이 약한 환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위험을 함께 안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열정은 분명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연료다. 하지만 연료는 탄다. 번아웃(burnout)이라는 말이 '다 타버렸다'는 뜻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번아웃은 열정이 없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열정이 너무 커서 자기 자신까지 땔감으로 써버린 사람에게 찾아온다. 감기는 대개 일주일이면 낫지만 번아웃은 그렇지 않다.

끈기의 다른 이름

나는 오랫동안 끈기를 '멈추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번 감기를 겪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진짜 끈기는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때때로 멈춰야 한다.

버티는 것과 지속하는 것은 다르다. 버티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넘기는 기술이고, 지속하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다. 버티기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임계점에서 무너지지만, 지속하는 사람은 임계점에 닿기 전에 스스로 속도를 조절할 줄 안다. 건강은 한 번 얻으면 계속 가지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매일 돌보고 살펴야 하는 상태에 가깝다. 영원히 버틸 수 있는 몸은 없다. 쉼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내 몸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대한 정직한 응답이다.

"푹 쉬세요"라고 말하려면

언젠가 나는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무리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의사들이 가장 흔하게 건네는 처방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번 감기를 겪고 나니, 그 말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처방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쉬라는 말은 쉽지만 그 말을 듣고 실제로 쉬는 것은 어렵다. 해야 할 일과 주변의 기대, 그리고 스스로의 오기와 의무가 쉼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은 쉼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쉬지 못하는 의사가 환자에게 쉬라고 말할 때,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한계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돌이켜 보면 몸은 처음부터 말을 걸고 있었다. 다만 나는 한 번도 먼저 묻지 않았다. 오늘은 좀 어떤지, 이 속도로 계속 가도 괜찮은지. 몸도, 사람도,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다음에 목이 칼칼해지면 오기 대신 따뜻한 차 한 잔과 이른 잠을 택할 생각이다. 그것이 앞으로 오래도록 이 길을 걸어가기 위해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끈기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오늘 하루쯤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봐 주었으면 한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리고 같은 질문을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건네 주었으면 한다. 누군가 물어 준다는 사실만으로, 임계점 앞에서 한 번쯤 걸음을 멈출 수 있는 겨를이 생겨난다. 우리가 이 길을 오래 걸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단단한 맷집이 아니라, 단지 먼저 건네는 질문 하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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