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이한수 기자] 이오플로우가 미국 인슐렛과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약 791억원의 배상 판결을 뒤집은 항소심 판단을 지켜냈다. 인슐렛의 재심리 신청이 기각되면서 소송 부담을 덜었지만, 국내에서는 감사의견 거절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따른 주식 거래정지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이오플로우가 전날 제출한 공시에 따르면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인슐렛의 재판부 재심리와 전원합의체 재심리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이오플로우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을 파기한 항소심 결론이 유지됐다.
소송은 인슐렛이 2023년 이오플로우 등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제기했다. 양사는 몸에 부착해 인슐린을 주입하는 패치형 인슐린 펌프를 개발·판매하는 경쟁사다.

2024년 12월 배심원이 인정한 배상액은 4억5200만 달러였다. 이후 1심 법원은 지난해 4월 영구금지명령과 금전배상의 구제 효과가 중복되는 부분을 고려해 배상액을 5940만 달러로 줄였다. 이번 공시에 기재된 약 791억원은 이 금액을 환산한 수치다.
항소심에서 판세를 바꾼 것은 청구 시효였다. 항소법원은 지난 5월 28일 인슐렛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영업비밀 침해 청구의 3년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이오플로우가 2018년과 2019년 미국당뇨병학회(ADA)에서 전시한 시제품과 2020년 7월 공개한 상장 관련 증권신고서 등이 주요 근거가 됐다. 법원 다수의견은 인슐렛이 소송 제기 3년 이전에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사실관계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봤다. 다만 시효 만료를 이유로 원심을 파기한 것으로, 영업비밀 침해 자체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과는 구분된다.
이 같은 5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인슐렛은 재심리를 신청했다. 미국첨단의료기기협회(AdvaMed)도 지난 8월 법정 의견서를 제출하며 인슐렛의 전원합의체 재심리 신청을 지지했다.
협회는 의료기기가 인체 구조와 착용성, 규제 요건 등의 제약으로 외형이 비슷해질 수 있으며, 공개된 시제품만으로 내부 알고리즘이나 제조공정의 영업비밀 침해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시제품 공개 단계부터 영업비밀 보유 기업이 침해를 알 수 있었다고 판단해 시효를 계산하면, 침해를 합리적으로 발견하기 전에 청구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지난 19일 인슐렛의 재심리 신청을 기각했다. 인슐렛의 재심리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협회 의견이 제출됐지만, 이오플로우의 배상 책임을 뒤집은 5월 판결은 유지된 것이다.
소송의 최종 종결까지는 절차가 남아 있다. 회사 공시에 따르면 항소법원은 재심리 기각 이후 7일 이내에 항소심 판단을 원심에 공식 전달하는 명령인 맨데이트(mandate)를 발부할 예정이다. 인슐렛은 내년 1월 19일까지 연방대법원에 심리를 요청할 수 있으며, 최대 60일의 기한 연장도 신청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이번 결정이 메드트로닉과의 인수계약 해지에 따른 해약금 문제에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미니메드가 지난 9월 SEC에 제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인수계약은 2023년 말 해지됐다. 이오플로우는 2024년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에 메드트로닉을 상대로 2600만 달러의 해약금을 청구했고, 메드트로닉 측 관계사들은 계약상 진술·보장 위반을 주장하며 반대청구를 제기했다.
다만 중재판정부는 올해 3월 10일 이오플로우의 청구를 재청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위드아웃 프레주디스(without prejudice)' 방식으로 기각했다. 보고서에는 이후 재청구 여부나 반대청구에 관한 최종 판단은 제시돼 있지 않다.
두 분쟁은 해약금의 귀속 문제에서도 연결돼 있었다. 미국 1심 법원은 지난해 이오플로우가 메드트로닉으로부터 해약금을 받으면 이를 인슐렛에 이전해 배상액에 충당하도록 했다. 이오플로우 소송대리인인 쿨리는 지난 5월 항소심 판결이 배상 평결과 전 세계에 적용되는 영구금지명령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에 비춰보면 해약금 이전 명령도 항소심 파기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처리 범위는 후속 법원 절차를 확인해야 한다. 메드트로닉의 해약금 지급 책임까지 인정된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은 인수계약 해지의 정당성을 판단한 사건이 아니어서, 해약금 회수 여부는 별도 계약·중재 절차에 달려 있다.
국내 증시에서는 거래정지 해소가 과제로 남아 있다. 이오플로우 주식은 지난해 3월 21일부터 매매가 정지된 상태로, 현재 2025사업연도 감사의견 관련 상장폐지 사유와 상장적격성 실질심사가 함께 걸려 있다.
지난달 29일 2024사업연도 재감사의견이 '적정'으로 변경되면서 해당 연도 감사의견에 따른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는 해소됐다. 그러나 2025사업연도 감사의견 거절 사유는 남았고, 거래소는 재감사 재무제표에서 확인된 자본전액잠식 등을 이유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추가됐다고 안내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지난 8일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한 결과 내년 4월 8일까지 6개월의 개선기간을 부여했다. 이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와 관련한 것으로, 2025사업연도 감사의견 거절에 따른 개선 절차와는 별개다.
회사는 개선기간 종료 후 15영업일 이내에 개선계획 이행내역서와 전문가 확인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서류 제출일로부터 20영업일 이내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미국 소송에서 유리한 판단을 유지했더라도 감사의견 관련 사유 해소와 거래소의 상장 유지 판단을 거쳐야 거래재개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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