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규제를 받지 않는 비급여진료를 주로 하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등의 의료서비스 공급 가격은 오래 전부터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논리가 의료 서비스의 공급 가격을 결정하면서 라식/라섹수술, 치과 임플란트 등에서 수가 인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건강보험이 수가를 정해놓은 필수 의료서비스도 공급 과잉 상태의 의료시장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만성신부전 환자들을 대상으로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고 혈액투석이 가능하다고 선전하거나 별도로 환자 모집책을 고용해 금품을 제공하며 환자를 유인하는 병원들이 있다.
혈액투석은 필수의료영역이어서 정부가 정한 건강보험수가로 고정되어 있지만, 진료량을 증가시키면 의료서비스에 수반되는 비용이 절감되어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박리다매'의 경제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한신장학회가 추천한 의사 일인당 적정 투석 환자수가 36명임에도 100명 이상 진료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이런 관행은 개원가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으로 병원의 규모를 늘려온 대형병원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의 재정 수지악화는 특정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대형 병원들이 비상경영체제 상태이다.
우선, 수요측면에서는 전체 인구수는 1990년 4339만명에서 2011년 4821만명으로 거의 정체상태이다.
65세 고령인구 비율이 증가해 의료에 대한 수요증가에 기여했지만 의사수가 같은 기간에 2.5배 늘어나 의사 1인당 국민수는 1250명에서 500명으로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공급측면에서는 입원병상 수를 살펴보면, 1990년 국민 1000명 당 2.3병상에서 2011년에는 9.6병상으로 4배 이상 늘었다. OECD의 다른 국가들의 평균치와 비교하면 병상수는 2배이고, 인구당 CT기기 대수는 1.5배, MRI기기는 1.6배 등 모든 지표에서 공급과잉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정부가 CT, MRI, PET, 초음파 수가를 일방적으로 삭감할 수 있는 저변에는 이런 의료기기가 이미 공급과잉상태에 있기 때문에 가격을 인하해도 정책수행에 지장이 없으리라는 보이지 않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20여년간 저수가로 발생하는 병원경영의 손실을 비급여진료나 진료량 확대로 보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의료수가가 낮기 때문에, 환자들은 쉽게 병원을 방문할 수 있었고, 의사들도 부담없이 진료량을 증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병원들은 이번에도 위기를 같은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과거와 같은 해결책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가장 큰 이유는 의사의 업무량이다. OECD 보건의료지표로 추정해보면 다른 나라 의사보다 3배 정도 진료량이 과중하기 때문에, 진료량을 더 증가시키면 수익증대보다는 환자의 안전문제로 오히려 손해를 볼 위험이 더 높기 때문이다.
또, 가격인하로 인한 수요증가도 이미 탄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진주의료원 폐쇄에 대하여 경상남도는 강성노조가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공공의료를 무시한 정책이라고 정치적으로 충돌하고 있지만, 경제논리로 바라보면 의료시설이 공급과잉인 상태에서 경쟁력이 없는 병원부터 문을 닫기 시작한 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병상을 늘리고 고가장비를 도입해 저수가를 극복하던 시대는 지났다.
병원은 양적 확대보다 의료의 질 개선으로 국민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전달하는 방안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보전이 선행돼야 한다.
저수가정책으로 왜곡되기 시작한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임시방편의 정책들은 또 다른 왜곡을 유발해왔다.
의료서비스도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경제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정책당국자도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들의 의료 복지 향상을 목표로 한다면 정부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건강의료보험 수가부터 정상화시켜, 병의원들이 의료의 양이 아니라 의료의 질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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