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급여 낭비 방지를 골자로 한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는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았거나 자격을 상실한 무자격자,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장기 체납한 급여제한자라도 진료를 먼저 받고 이후에 보험금을 환수해왔다. 앞으로 부정수급 방지대책이 시행되면, 의사는 건강보험 무자격자, 급여제한자를 진료한 경우 진료비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제도 시행이 목전에 있는데 정작 건강보험 가입자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건보재정 누수가 문제라면, 먼저 그 사례를 살펴보자. 이를테면 건강보험 자격이 상실된 외국인이 진료를 받았다. 의원에서는 진료비를 보험공단에 청구하고 진료비를 지급받았다. 이후 공단이 보험료를 걷고자하면 해당 외국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버려 진료비 환수가 불가능하다. 비슷한 사례로 불법체류자의 경우 출입국관리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건강보험에 가입한 다른 외국인과 한국인의 명의를 빌려 진료를 받는다.
또,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정부는 건강보험료 수입의 일정 비율을 건보공단에 지원하도록 명시되어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최근 7년간 밀린 국고 미지급금은 무려 8조 4천억에 이른다. 새는 돈을 잡지 못하고 걷어야할 돈을 제대로 걷지 못하니 건보재정이 악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약 50조원 규모에 이르는 건보재정 중 부정수급으로 인한 재정 누수액은 연간 9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려는 꼴이다.
다음으로 진료비 청구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현행 제도 상 진료 심사권은 심평원에 있고, 심사 여부에 따라 건보공단을 통해 진료비를 지급 받기 때문에, 실질적인 재정 지출 여부 결정권은 심평원에 있다. 때문에 건보 공단에서는 예전부터 재정 누수 방지가 가능한 시스템을 주장하며,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진료비를 지급하기 전에 환자의 보험 자격을 먼저 확인하자는 것인데, 이 같은 주장은 심평원의 업무를 침해할 수 있어 논란이 되어 왔다. 하지만 그 업무를 진료현장으로 넘겨버리면서, 공단과 심평원간 내부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보험공단에 소속된 직원이 아니다. 단지 보험공단과는 계약관계를 맺고 있을 뿐인데, 보험공단의 업무를 왜 의료기관에 떠넘기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수진 자격 확인 과정으로 인해 환자-의사 관계 악화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돈을 밝힌다고 생각하는 일반적 정서에 보험료 확인 절차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세리[稅吏]가 유대인들로부터 받던 오욕과 멸시를 기억해야 한다. 더욱이 의료인은 의료법 제 15조에 따라 진료 거부가 금지되어 있다. 만약 급여제한자가 진료 받기 위해 병원에 온다면 비보험으로 진료비를 받아야 하는데, 보험료도 내지 못한 취약계층이 비보험 진료비를 지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현 진료비 청구 시스템, 즉 청구대행제에서 비롯된다면 환자 직접청구제로 전환해야된다. 공단에서 공제 받아야 할 몫을 환자가 직접 청구하게 된다면, 무자격자와 급여제한자에 대한 재정누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진료비 심사 시에 무자격자와 급여제한자는 급여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한 보험료와 진료비 문제가 진료 현장에 개입되지 않아 환자-의사 관계도 회복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그 과정이 번거로울 수 있겠지만, 주변에 연말 정산 안 하는 사람 있던가.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이대로 강행한다면, 건강보험은 스스로 공공성을 져버리는 계기가 될 것이고, 환자와 의료인간의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건강보험 도입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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