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의원님. 저는 지난 9월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의원님을 처음 뵙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바쁜 일정으로 인사말만 하고 토론회장을 떠나시는 여러 의원님들 가운데 의원님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많은 중책을 맡고 계시기에 저토록 바쁘시구나'라는 생각으로 무심코 지나갔는데 토론회 도중 중요한 패널의 발표가 끝나고 나가시는 의원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인사말 후 토론회장을 나가셨다가 발표시간에 맞춰 중요한 내용을 챙겨듣는 열정과 성실함으로 인해 그날 이후 의원님을 더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보건복지위 관련 사진 기사에서 의원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의원회관에서 의원님을 직접 뵀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국민 건강을 위해 애 쓰시는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갑자기 이런 편지를 쓰는 이유는 최근 발생한 유명 연예인 사망과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하여 제가 큰 고민에 빠져 의논드리고 또 몇 가지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2000년 당시 의약분업에 사활을 건 이해단체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의약분업이 실시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사를 부도덕하고 돈만 밝히는 아주 나쁜 직업군으로 몰아세운 방법이 큰 효과를 봤습니다.
이로 인해 아프면 꼭 찾을 수밖에 없는 의사와 국민간의 분열을 조장하고, 환자 치료에 가장 중요한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환자들이 진료 받는 의사를 믿지 못하니 치료결과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져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게 되고, 말기 암 환자나 만성질환을 가진 분들은 검증 되지 않은 대체의학이나 건강식품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습니다.
2012년 4월 시행된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현재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병원과 직접 합의하거나 법적 소송에 추가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및 중재신청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의료분쟁조정제도 시행 추진배경으로 늘어나는 의료분쟁(소송건수:1989년 69건/2011년876건으로 약13배)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해 의료인과 환자간의 신뢰회복을 위한 건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의료분쟁조정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원장을 임명하고 지도감독은 물론 예산승인과 결산감사까지 보고받으며, 조정위원과 감정위원에는 소비자단체임원이 필수적으로 포함되고 조정 신청 시 법을 잘 모르는 환자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의료사고 시 소송을 통하지 않고 편하게 해결되는 것처럼 언론에서 말하지만, 실제 내용은 의료분쟁 중재를 통한 후 마음에 안 들면 또 소송으로 가야하므로 더 복잡하고 변호사의 일거리만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가 더 편해지는 것은 결코 없고 현실적으로 만족하는 의료인도 없는 제도입니다.
사회통념상 모든 분쟁에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우선이고 안 되면 법적 소송으로 가게끔 돼 있습니다. 그 법적 소송도 헌법에 보장된 3심제에 의해 그 분쟁을 사법부에서 공정하게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의료분쟁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쟁에도 따로 분쟁조정원을 만들어야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최근 유명 연예인 사망 사건의 경우 바로 법적 소송에 들어갔으므로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거치지도 않았으며, 의료분쟁조정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사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이용해 의료분쟁의 사법부 역할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복지부와 늘어나는 의료소송으로 이익을 챙기려는 분들이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환자의 권익을 강화한다는 핑계로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의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법안의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 백내장수술 한 건당 안과전문의의 인건비(의사업무량)가 9만6947원입니다. 백내장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비용(위험도 원가)은 한 건당 5400원입니다.
의원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암묵적 지식과 수치화 할 수 없는 의술의 특징과 함께 똑같은 치료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앞으로 의료분쟁조정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만족치 못하는 모든 환자의 의료분쟁 조정신청이 예상됩니다.
제 경우 백내장수술 후 늘어나게 되는 의료분쟁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은 구 성남지역에서 백내장 수술로 광명을 찾아드린 일이 이제 추억 속의 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의원님. 차라리 백내장수술의 의료사고비용 5400원을 복지부에서 가져가고 수술 후 분쟁을 복지부에서 맡도록 법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의사는 환자 치료하는 사람이지 의료분쟁을 주 업무로 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환자와 의사간에 신뢰를 깨뜨린 의약분업이후 이제는 의료분쟁을 부추겨서 환자와 의사간에 싸움박질 하도록 하는 법안까지 통과된다면 의사들의 방어 진료와 수술기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애꿎은 환자에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디 엉뚱한 제도와 정책 탓으로 복지부가 세계에 자랑하는 의술의 혜택을 국민들이 충분히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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