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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료전달체계, 의료계 대승적 판단만 남았다

메디칼타임즈
발행날짜: 2018-01-24 12:00:57

대한가정의학회 정명관 정책위원/홍보위원

지속가능한 양질의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채택이 불발되었다.

2016년 1월 15일부터 시작해 2년 동안 정부와 공급자, 수요자, 학계 전문가, 관계기관들이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를 구성하여 14차례의 전체 회의, 2차례의 워크숍, 5차례의 소위원회 회의 등 총 21차에 걸쳐 논의를 진행하며 합리적 개선안을 도출하려 애썼으나 아쉬운 결말을 맞았다.

지난 18일 협의체는 공식적으로 해산했다. 다만 이달 30일까지 의료계가 조정안을 마련할 경우 재논의해 볼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져 있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의 주요 내용은 다섯가지로 (1)기능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 (2)의료기관 기능강화 지원 (3)환자중심 의료를 위한 기관간 협력, 정보제공 강화 (4)의료기관 기능 정립을 위한 의료자원 관리체계 합리화 (5)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상시적 추진체계 마련이다.

또 이 권고문을 추진하는 원칙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는데 지역화 원칙, 재정중립 원칙, 가치투자 원칙, 자율참여와 선택 원칙이 그것이다. 흔히 재정중립 원칙만을 보고 추가 재정 투입 없이 개선하려는 것 아니냐며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중장기적으로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추가 재정투자를 하도록 명시했다.

이해를 위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면, 제일 중요한 것이 '기능 중심 의료기관 역할 정립'인데 ▲일차의료기관은 지역사회 내에서 간단하고 흔한 질병에 대한 외래진료, 만성질환 등 포괄적 건강관리, 간단한 외과적 수술이나 처치 등을 담당하고 ▲이차의료기관은 일반적 입원, 수술진료, 분야별 전문진료 및 취약지역 필수의료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삼차의료기관은 희귀난치질환 및 고도 중증질환의 진료와 함께 의료인의 교육, 연구·개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역할을 분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기능에 맞게 진료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적절한 수가를 책정하여 지원하고, 그렇지 못한 진료행위에는 환자 부담을 증가시키고 병의원 수가는 인하시키는 방향으로 해 1, 2, 3차 의료기관 간의 기능이 분리될 수 있도록 했다.

또 현 의료기관의 사정을 감안해 이러한 개편은 점진적인 조정과정을 거칠 것을 제안하였으며 강제 조항보다는 자율 참여와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채택이 불발된 이유는 의료계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외과계 의원급 의료기관이 입원실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한 때문이다.

외과계 의원이 지금까지의 진료형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해하면서도 개인의 생존권만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권고문 채택을 거부함으로써 국가 대계를 방해하려 한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외과계 의원이 개선안의 취지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우리나라는 지난 40년간 급속하게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전국민 건강보험체계를 갖추었지만 의원과 병원의 역할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게다가 저수가 체계와 진료량 증가가 맞물려 연간 1인당 외래이용 횟수와 입원 일수, 병상 수는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고, 행위별 수가제와 의료기관 이용의 무제한적 자유로 의료비 증가율과 병상 수 증가율도 최고 수준이었다.

이런 의료제도로는 의료의 질 저하는 물론이고 앞으로 닥칠 고령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체계와 의료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을 갖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1-2-3차 의료기관 간의 역할 분리와 거주지 인근에서 충분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의료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양질의 의료 제공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또 지금 제도 개선을 시작한다고 해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엔 5년에서 10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더 이상 늦출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진료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개선안 자체를 불발시키려는 태도는 전문가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지엽적인 문제로 개선안의 원칙을 훼손하려 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필자는 논의 초기부터 의협과 병협과 의료소비자가 너무 편의 만을 내세우며 전달체계 개선의 대원칙을 망각하고 근시안적인 대책을 세울까봐 우려했었는데 다행히도 도출한 개선안은 그렇지 않고 비교적 원칙에 충실했다고 평가한다.

우리나라의 급성기 병상수는 OECD의 두 배 수준이다. 전체의 4분의1 정도인 10만 병상이 의원급 의료기관에 있다.

앞으로 총 병상 수 및 지역별 병상 수를 조정할 계획도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에 있는 만큼 의원급 의료기관이 입원실을 줄이지 않는다면 병원의 반대를 피할 수 없다. 의원은 외래, 병원은 입원이라는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과계의 주장과는 달리 의원급 의료기관이 입원실을 갖지 못하게 완전히 막은 것도 아니다.

새로운 의료전달체계는 일차의료기관을 내과계 만성질환관리 전문의원, 수술을 하지만 병실은 없는 외래 전문의원, 수술실과 입원실을 두고 이차의료기관으로 상향, 미참여 의원 등 4가지 기능으로 분류했다. 본인 선택에 따라 입원실을 없앨 수도 있고 유지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의료계의 대승적인 판단이다. 30일까지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의협회장 선거 일정 때문에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강성으로 개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면 돌이키기 힘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미 정부와 소비자 단체의 압박이 있고, 의료전달체계 개선 자체가 의료계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이루어져야만 하는 부분이기에 의료계의 뜻과는 달리 진행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은 구체적인 내역을 하나 하나 정한 것이 아니라 목표와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개선안 내에도 점진적인 조정과정을 거칠 것과 자율참여제를 천명하고 있는 만큼 외과계 의원의 입원실 문제도 충분히 큰 틀 안에서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먼저 개선안을 받아들이고 나서 현재 의료기관의 생존권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

도시 재개발 사업을 할 때에도 도로 부지나 공공 부지 등 주요 골격을 미리 계획해 놓고 구역별로 재건축할 때 차츰 그 방향으로 유도해 나간다.

의료 제도도 당장 모든 것을 이상적인 형태로 뜯어고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제도를 먼저 도출한 후 차츰 그 방향으로 충격 없이 옮겨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현재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목표를 수정하기보다는 의료전달체계를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해 의원급, 중소병원, 대형병원 별로 중장기적인 역할 목표를 정해 놓고 5년 계획이나 10년 계획을 세워 장기적인 안목으로 진행해 나가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원급은 외래 진료 중심의 주치의 역할, 병원급은 입원과 수술 중심, 상급종합병원은 고난이도 치료와 희귀난치성 질환, 교육, 연구로 의료기관 종별 표준업무를 지키도록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길이다.


※외부 칼럼의 경우 메디칼타임즈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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