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에 이어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등 일련의 사망 소식이 이어지면서 의사들은 상실감보다 큰 '도덕적 상해'(Moral Injury)를 입었다."
의학한림원 임태환 신임 회장(66, 울산의대 명예교수)은 최근 서울아산병원에서 메디칼타임즈 등과 만나 국민 건강과 환자 치료에 헌신해 온 의사들의 잇따른 죽음에 따른 의료계 내부의 깊은 상흔을 이같이 진단했다.
도덕적 상해(Moral Injury)는 군인들이 전투에서 적군을 사살한 후 느끼는 정신적 상실감과 괴리감을 표현한 뜻으로 최근 미국에서 의학적 연구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날 임태환 회장은 "우리나라 의사들이 느끼는 도덕적 상해는 비단 잇따른 의사 사망 뿐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보험급여 기준 때문에 환자를 위해 약제를 쓰고 싶은데 처방하지 못하거나, 치료 보조행위를 할 수 없을 때도 동일하다. 처음 한 두 번은 그냥 넘어가는데 해당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과 맞부딪칠 때 의사들은 도덕적 손상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일명 '심평의학'으로 불리는 보건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의 보험급여 잣대에 입각한 틀에 박힌 급여청구 심사와 삭감이 의사들의 최선 치료를 가로막고, 의료계와 정부를 향한 냉소주의를 유발하고 있다는 의미다.
임태환 회장은 "미국 등 선진국은 전문가를 존중하고,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이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 의학한림원(NAM, National Academy of Medicine)은 기부금과 의회 지원 등 한 해 150억원의 재정자립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가를 존중하고 인정하지 못한데 따른 국가적 손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지성집단 수장으로 보건의료 연구개발(R&D) 분야 정책도 소신을 피력했다.
임태환 회장은 "현재와 같은 연구 성과에 집착하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배출은 불가능하다. 참을성 있게 연구비를 지원하고 기다려주고, 선의의 실패도 인정해야 의학자들이 소신 있게 자신의 연구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노벨생리의학상은 한두 명 의학자를 키워 될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영상의학회 이사장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등을 역임한 그는 깨어있는 지성으로 의학한림원 변신을 공표했다.
임태환 회장은 "의학한림원이 뒷방 늙은이들의 명예직에서 벗어나 국가나 의료계 차원의 중요한 보건의료 현안이 발생할 경우 치우침 없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목소리를 내겠다"면서 "도덕적, 학문적 판단에 입각해 의견을 낼 사항인지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현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도 일침을 가했다.
임 회장은 "보편적 복지 차원의 보장성 강화 원칙에는 동의한다. 다만, 서두르다 의료인들이 다치면 문케어도 힘들어진다. 의사들의 번-아웃과 도덕적 상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면서 "중요한 점은 많은 의사들이 국민건강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의료계를 존중한 정책 추진을 당부했다.
임태환 회장은 "이달부터 임기 3년 동안 의학한림원 인지도 향상과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 젊은 회원들을 임원진에 배치해 합당한 현안은 적극 검토하겠다"고 전하고 "의학 뿐 아니라 보건학, 간호학, 약학 등으로 회원 범위를 확대해 의학한림원의 내외적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회원 수 400여명인 의학한림원 임태환 회장 집행부는 박병주 부회장(서울의대 예방의학)과 박성욱 제4분회장(울산의대 내과), 송재관 총무이사(울산의대 내과), 한희철 홍보위원장(고려의대 생리학), 홍성태 윤리위원장(서울의대 기생충학) 등 주요 의과대학 석학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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