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던 8월의 어느 날, 한 지방의 교도소에서 사십 대 중반에 장기수가 멈추지 않는 장출혈로 중환자실로 이송되어 왔다. 이미 응급으로 혈관색전술을 시행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출혈은 지속되었고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는 간경화 말기 환자였다. 수혈을 하고 지혈제를 쓰고 많은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죽음의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막기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는 간성뇌증으로 의식을 잃을 것이고 혈압은 계속 떨어질 것이고 호흡도 어려워 질것이고. 심장도 멎을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게는 아직 병원에 도착하지 않은, 수년간 연락을 하지 않은 친형과, 가끔 면회를 오는 사촌 형이 있었다. 숨쉬기가 어려울 때 인공삽관을 할 것인지,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지 그의 의식이 남아있을 때, 환자 본인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그러나 환자가 내게 먼저 말을 건넨다.
“선생님, 저는 장기수 인데요, 오늘 갑자기 형(刑)집행정지가 되었어요. 조금 있으면, 가족들도 온다면서요? 너무 기뻐요. 정말 좋아요. 근데 왜 갑자기 … 형(刑)집행정지가 되었을지 선생님은 아세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떤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그의 편안한 죽음을 위해서 나는 말을 해야 했다.
"저…환자분, 사실은 환자분 건강상태가 많이 안좋아요, 간경변 말기인데 소장에서 출혈이 의심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혈관 색전술도, 수혈도, 지혈제도 효과가 없습니다. 수술은 너무 위험해서 할 수가 없어요. 환자분 어쩌면 환자분 조금 있으면 숨쉬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또… 더 악화되면 심장이 멎을 수도 있어요."
나는 너무나 무서운 말을 나도 모르게 속사포처럼,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형(刑)집행정지로 풀려난 것이 마냥 기쁜 한 인간에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생님 심장이 멎으면 내가 죽는다는 건가요? 진짜예요? 내가 죽는다는 게? 진짜 내가 죽는다고요?"
나는 망설였다. 이 환자를 인공삽관 하고 심폐소생술을 한다면… 그 끔찍한 상황은 상상하기 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냥 "네, 안타깝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환자분께서 상태가 나빠지면, 호흡이 나빠지면 인공삽관 하실 것인지,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 하실 것인지 결정해주셔야 해요, 지금은 간경변 말기고 출혈이 계속되고 있어 인공삽관이나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해도,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고 혈소판이 1000개도 안되기 때문에 가슴압박을 하게 되면…" 나는 환자를 바라볼 수 없었다. 환자는 말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사촌형이 오면 이야기 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제발 그가 깨어 있는 동안 사촌형이 도착하길 간절히 바랬다.
다행히 얼마 안되어 사촌형이 도착했다. 한참을 이야기 하고 환자가 나를 부른다.
"결정하셨어요?"
"네. 선생님 저. 편하게 죽을래요. 꼭 죽어야 하는 거라면요. 근데 한가지 소원이 있어요. 제 소원이 가족이랑 밥한번만 같이 먹는거예요. 그건 할 수 있지요?"
그는 아무리 산해 진미가 차려진다 할지라도 먹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되지요"하고 침대 앞에 붙어 있던 NPO(금식) 스티커를 떼주었다. 점심 시간에 사촌형 내외는 그를 위해 죽을 사왔고, 그를 위해 근사한, 마지막 상을 차려주었다. 그는 당연히 한숟갈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그는 쓸쓸히 중환자실 한 모퉁이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나는 그에게 죽음의 소식을 전하고 며칠간 우울함에 빠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환자에게 죽음을 이야기 하기 어려울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연명의료결정법 1년이 지난 후 중환자실 의사로서 견해를 써달라는 기자분의 말씀을 듣고 좀 망설였다. 어떤 이야기를 담는 것이 가장 좋을까. 나는 중환자실 의사로서 연명의료결정시 무엇이 가장 힘들었을까. 지금까지 중환자실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에 대해서는 많은 한계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보장될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교 사회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되고, 보호자가 환자의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많아,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보장되기 어렵다.
2. 중환자는 말기 암환자와는 달리 갑자기 나빠져 내원하는 경우가 많고,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가 생존할 것인지, 사망할 것인지 예측이 어렵고, 언제 사망할 것인지 예측은 더더욱 어렵다.
3. 경제적 상황, 가족들의 심적 부담이 연명의료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러한 점들이 연명의료결정법을 현실에 적용하는데 많은 방해요인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의료인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죽음에 대해 환자에게 직접 말하는 일이었다. 나는 묻고 싶다. 우리가 –의료인이, 환자가, 환자의 가족이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각자의 죽음에 대해서 논의할 준비가 되었나 하는 것이다.
가정 산소에 의지해서 집안에서만 계시던 82세 만성폐쇄성 폐질환 할아버지가 폐렴에 의한 패혈증 쇼크로 입원했다. 할아버지의 가족은 약물치료를 제외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조금씩 경과가 좋아졌다. 할아버지는 나만 보면 매일 묻는다. "나 정말 일년만 더 살고 싶어. 집에 갈 수 있지?"
이렇게 묻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그분의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할아버지께서는 가정 산소를 이미 오래 하신 말기 만성폐쇄성 폐질환 환자여서 죽음을 준비해야 해요, 숨을 못 쉬게 되면 인공 삽관 하실 거예요? 그러면 인공 삽관 제거가 힘들고…" 라는 말 대신에 오늘도 나는, "당연하지요, 숨 크게 크게 잘 쉬고 기침 잘 해서 가래 잘 뱉으면 얼른 집에 갈수 있어요.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어요. 얼른 나아요. 우리." 라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아직 의료인조차, 죽음에 대해 환자와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환자에게 직접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후에 겪게 되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료받을 길이 없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연명의료 중단의 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명의료중단의 문제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환자의 자기결정을 중심으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된 것은 의료분야의 결정과정에 환자가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도 큰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삶에 대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한 인간이 죽음을 마주할 때, 삶에 대한 애착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 순간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히 생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고 할 수 있는지를. 연명의료결정법의 성공적 시행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죽음의 결정과 관련된 성숙한 문화적 성장이 가능해야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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