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기득권 지키려는 구세대와 생존 어려운 신세대 시각차 첨예 "비급여 첩약, 한의원 주 수입원" vs "보장성 확대가 살 길"
첩약 급여화 둘러싼 한의계 내분
정부가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인 첩약 급여 시범사업.
의료계는 첩약의 안전성, 유효성을 문제 삼으며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지만 그전에 한의계 내부에서조차 합의가 되지 않았다.
첩약 급여화 찬성과 반대가 팽팽히 맞서며 갈등이 외부로까지 표출되고 있는 상황.
겉으로는 한약사와 약사가 참여하는 첩약 급여를 절대 반대한다고 주장하지만 기저에는 '세대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세대와 어려워진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젊은 세대가 대립하고 있는 것.
사실 첩약 급여화로 인한 신-구 갈등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2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2000억원을 투입해 첩약 급여화를 하기로 결의까지 했지만 한의계 내분으로 무산된 적 있다. 그 때의 갈등이 7년이 지나서도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첩약, 한의원 수익에 결정적…한의사 고유 권한"
첩약은 한의원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수익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항목이다. 실제 한의가 건강보험에 편입되던 1980년대 후반에는 첩약이 한의원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경북 A한의원 원장은 "비급여인 첩약으로도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라며 "첩약 시장이 지금도 1조~2조원 가까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경험이 많은 한의사 입장에서는 첩약이 매출의 주수입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강보험 진입을 반길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상지한의대 동문 100명은 성명서를 통해 "첩약 급여로 일정 부분의 예산을 한의사가 독점한다고 가정해도 한의계에 들어오는 수익은 노인정액제 수익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라며 "노인정액제 구간 하향으로 수입 감소를 초래하는 첩약 급여화 논의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 변동 요인 및 관리 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첩약은 한방 비급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방진료비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진료비 점유율·환자 수 지속 감소…"시장 넓혀야"
첩약이 주된 수입원이긴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라는 게 젊은 한의사들의 생각이다. 실제 건강보험에서 한방의 진료비 점유율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한의원을 찾는 환자 수도 줄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보장성 확대를 통해 시장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한의사협회 보험위원회에 따르면 건강보험에서 한방 진료비 점유율은 2014년 4.2%에서 2018년 3.5%로 줄었다. 환자 수 역시 2014년 1318만명에서 2018년 1249만명으로 69만명이 줄었으며 연평균 1.3%씩 감소했다. 의료기관 중 한방 분야만 유일하게 수치가 감소했다.
경기도 C한방병원 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에 대해 환자들은 내 돈을 내지 않고 치료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라며 "건강보험, 실손보험이 그렇다. 한방 의료는 실손보험에서도 배제돼 비급여는 보장해주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첩약의 인기가 높지만 실손보험이 안되니까 환자가 선뜻 선택하지 않는다"라며 "80~90년대는 실손보험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첩약이 수익에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덧붙였다.
첩약 급여화가 한방 의료의 시장성 확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 D한의원 원장도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한약이 많은데 지금 한약은 몸 보신에 좋은 것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건강기능식품의 업그레이드 버전밖에 안된다"라고 지적하며 "치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첩약의 급여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것인 좋은 것이라고 개화기 때 쇄국정책을 해서는 안 된다"라며 "첩약이 급여화되면 한의계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파이가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6년 전과 달라진 분위기? 무조건 반대는 아니다
그래도 6년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내분이 있긴 하지만 첩약 급여화를 원하고 있다는 심리가 깔려있다. 실제 2017년 한의협에서 진행했던 대회원 설문조사에서는 78.2%가 첩약 급여화를 원한다고 했다. 투표 대상 1만9730명 중 60%인 1만1947명이 참여했다. 한의사협회를 기습 점거하고 농성까지 하는 물리적 움직임도 아직까지는 없다.
제주도, 광주, 경북 등 일부 시도한의사회는 아예 시범사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서울시한의사회는 회원 투표 결과 70.8%가 첩약 급여화에 반대한다고 응답했지만 무조건적인 반대를 표명하기보다는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며 "정책 추진 과정에서 회원의 동의와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한 시도한의사회 임원은 "2년 전 한의협 중앙회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와 결과가 다르게 나오고 있는 것은 첩약 급여화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현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드러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집행부가 회원과 소통하는 부분에서 속도 조절을 못한 부분이 있다"라며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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