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전공의 근로조건 개선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하여 왜곡된 의료체계를 풀어갈 실마리는 한국 의료를 바닥부터 지탱하는 전공의 수련 체계의 개선에 있음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전공의 급여 체계 및 36시간 연속근무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유럽의 수련환경은 결코 한 번에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1970~80년대 서유럽 전공의들 또한 2022년 한국 전공의들처럼 주당 80~100시간 근무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예컨대 1975년 경제 위기 속에서 영국의 전공의들은 의사 역할보다는 허드렛일을 많이 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전공의들은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근로 조건에 반발하여 파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정부 안은 전공의들의 초과 근무 수당 및 대기 근무 수당을 50% 이상 깎는 안이었습니다. (Rao, 2015)
기성 세대로 구성된 영국의사협회(British Medical Association, BMA)는 정부 측 NHS와 잠정 타협하고자 하였으나, 후배 의사들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의사들은 1975년 10월부터 1976년 9월까지 약 1년 간 주당 40시간 준법 투쟁을 하였습니다. 선택 수술(elective surgery) 등은 취소되었습니다. 기성 의사의 조정 능력 부족에 대항하는 젊은 의사들의 통합된 단결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Rao, 2015)
1980년대 이후 서유럽 전공의들은 당직 수당 인상 및 근로 시간 감축 등을 내걸고 수차례 파업을 하였습니다. 1991년 주72시간 근무, 5시간 미만 수면 시간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주당 환자 대면 시간이 56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의료정책연구소, 2021) 2000년대 들어서는 유럽 전공의의 근무 시간 제한 조항 (European Working Time Directive, EWTD)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58시간-56시간-52시간' 순으로 10년 간 전공의 근로 시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안이었습니다. (박형욱, 2009)
2022년 현재 이들은 주당 48시간을 근무하고 있으며, 외과 등 일부 과는 12시간 연장 근무에 대해 일반의 수준의 임금으로 보상받고 있습니다. 한편 영국 전공의들은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에도 근로조건 관련 대규모 파업을 하였습니다. 제가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자격으로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 WMA) 파리 총회에 참석해 서유럽 전공의들에게 직접 확인한 내용입니다.
미국의 수련환경 또한 결코 한 번에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1980년대 미국의 전공의들 또한 주당 100시간 가까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1984년 18세 Libby Zion이 치명적인 약물 상호작용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오진은 전공의의 과로에 기인한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보호자는 뉴욕 주 정부가 병원을 감독하지 않았다며 뉴욕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미국의 전공의 근무 시간을 규정하는 리비 지온 법(Libby Zion Law)의 탄생 배경입니다. (Rosenbaum and Lamas, 2012)
2003년 미국의 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 (ACGME) 는 전공의 최대 연속근무 시간을 24시간으로 제한하였습니다. Institute of Medicine (IOM)은 2008년 인턴의 교대 근무 시간을 16시간으로 제한하고 최대 30시간까지 일하는 레지던트에 대하여 5시간 낮잠 시간을 할당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인턴 교대 근무 시간을 16시간으로 제한하는 안은 2011년 ACGME에 의하여 채택되었습니다. (Rosenbaum and Lamas, 2012)
공정한 대가와 인간다운 수련환경: 우리가 그려가야 할 미래
해외 동료들은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젊은 의사들을 '갈아 넣어' 유지되는 왜곡된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서는 우리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2022년 1월 대전협이 시행한 코로나19 진료 관련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59%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약 2년 여간 최소한의 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회의 영웅으로 칭해지지만 기본적인 처우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명감에 일하는 사람들이 박탈감과 번아웃 속에서 더 이상 헤매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OECD 통계, 선진국 사례 등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정부 관료 및 일부 학자의 모습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유리한 영역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주장을 강화하는 논거로 사용하고, 불리한 영역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들추어야 합니다.
의료의 질 보장 및 전공의 수련교육에 대한 대한 정부의 책임의식 결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형욱, 2009) 미국의 메디케어(Medicare)는 2010년 기준 전공의 인건비, 지도전문의 인건비, 교육비로 30억 달러, 간접비용으로 65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형욱, 2009; 의료정책연구소, 2021) 미국뿐만이 아니고 캐나다, 영국, 일본,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은 모두 전공의 수련비용에 대한 국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의료정책연구소, 2021) 우리 사회 젊은 의사들을 방치하는 한국 정부의 책임의식 결여, 부끄럽습니다.
국제 기준에 걸 맞는 전공의 근로시간, 수당 체계, 수련비용 지원 등을 이 글을 통하여 요구합니다. 근로기준법과 상식에 따라 당직 수당 및 재난 수당을 전공의에게 지급하시길 바랍니다. 비인간적인 36시간 연속 근무 제도 또한 OECD에 내놓기 부끄러운 제도이니 하루 빨리 개선합시다. 근무 시간이 24시간을 넘어가면 통상임금의 3배를 지급해도 모자랍니다. 한편 GDP 대비 의료지출 비중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여 힘 없는 전공의를 갈아 넣는 왜곡된 의료체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합니다. 필요한 만큼 전문의 및 일반의를 고용합시다.
구체적인 안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EWTD를 따라 수련시간 초과 근무 시에는 일반의로 계약해야 하며, 원내 일반의와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안을 제안합니다. 포괄임금제는 폐지합시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연장‧야간‧휴일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입원전담전문의 추가 고용 예산 확보, 주말 당직 3교대 근무 제도 활용 등 통하여 '80시간-78시간-76시간-72시간-68시간' 등으로 단계적으로 실현 가능한 근무 시간 감축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이 글을 빌어 제안합니다.
'공정한 대가와 인간다운 수련환경',
제가 전공의 선생님들과 함께 꿈꾸는 전공의 사회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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