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 법안소위에 상정되면서 의료계와 산업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산업계는 비대면 진료 폐지로 인한 의료 공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의료계는 오진 위험성을 이유로 이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여파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뒤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정부·국회 주도로 제도화 논의가 이뤄지던 사안이다.
애초 의료계는 이에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1차 의료기관 중심 재진 진료'에 한해 수용하기로 뜻을 모은 상황이다.
실제 지난 23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제75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투표자 156명의 71%인 111명이 이에 동의했다. 당·정 드라이브로 의료계 동의 없이도 비대면 진료가 제도화될 조짐을 보이자 현장 피해가 없는 선에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산업계는 초진 제도화를 촉구하기 위한 여론전을 본격화했다. 비대면 진료가 재진으로 시행될 경우 플랫폼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산업계는 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이날 '비대면 진료 지키기 대국민 서명운동'에 11만2564명이 참여한 결과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또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대표격인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방미사절단에 참여하면서 각계 이목을 끄는 상황이다. 국회 스타트업연구모임 유니콘팜도 초진 비대면 진료를 담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이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 등 보건의약 5개 단체가 성명서를 내고 "국민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반발하는 등 갈등이 재점화했다.
■초진 반대 핵심은 오진 위험성…책임 소재 어디에
초·재진 비대면 진료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초진의 경우 집에서도 진료가 가능하고 대기시간이 없다는 접근 편의성이 장점으로 주목받는 상황이다.
1인 가구 증가세와 필수의료 붕괴로 심화한 소아진료 대란 등이 이를 부각하는 상황인데, 실제 코스포 대국민 서명에도 자취생·직장인·학부모들의 애로사항이 대거 담겼다.
비대면 진료가 초진으로 시행될 경우 수익성 저하로 플랫폼들이 폐업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어 관련 수요가 갈 곳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복지부에 따라면 최근 3년 간 2만5797개 의료기관에서 1379만 명을 대상으로 3661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실시됐다.
하지만 초진 비대면 진료의 경우 편의성이 오히려 오진 위험을 키운다는 게 의료계 우려다. 비대면 진료는 촉진·타진이 어려워 대면 진료보다 정확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는데 초진 제도화로 사용량까지 올라간다면 문제가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더욱이 의료법상 오진으로 인한 문제는 의사의 책임인 만큼 의료기관 입장에서 비대면 진료는 실익이 크지 않으면서 지뢰밭을 걷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오진 문제의 책임을 플랫폼이 가져간다면 초진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산업계가 이를 수용할리 만무하다.
반면 산업계는 한시적 비대면 진료에서 큰 문제가 없었던 만큼, 안정성이 증명됐다는 입장이다. 또 해외 선진국에서 초진 비대면 진료가 시행 중인 만큼 우리나라도 이를 따라가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이를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으며 해외에서도 온전히 초진으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반박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산업계는 의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 수가를 150%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료계 주장에 동조하는 상황이지만, 복지부와 국회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플랫폼 광고로 주객전도될라…진료 지속성에 악영향
플랫폼이 환자·의사 선택권에 개입하면서 생기는 문제도 우려를 사고 있다. 환자가 플랫폼을 통해 의료기관을 선택하려고 할 때 이를 노출시키는 것은 업체의 권한인 만큼, 그들 입맛대로 순위를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과·위치·평가가 기준이 됐을 때는 그나마 낫지만 광고로 순위가 바뀌게 된다면 의료기관과 플랫폼의 상하관계가 뒤바뀌게 된다. 의료기관이 상위노출을 위해 플랫폼에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면 현재는 최저수준으로 책정된 의료기관·약국의 플랫폼 이용 수수료도 인상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국민 건강 측면에서도 부작용이 있다는 게 의료계 지적이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진료의 질을 상위노출광고로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으로 인한 문제는 배달앱처럼 업체 간 출혈경쟁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 실제 비대면 진료 플랫폼 광고로 인한 의약품 오남용 문제는 이미 유명한 문제다.
더욱이 진료 지속성이 중요한 만성질환 환자 등이 무분별한 플랫폼 광고에 노출될 경우, 이 때문에 매번 진료를 받는 의료기관이 달라지는 문제도 생길 수도 있다.
■우려 키우는 배달료 인상 요구…의료계서도 벌어지나
최근 한 배달앱 라이더들이 배달료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한 상황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지난 20일 집회를 열고, 한 배달앱 서비스 운영사에 3000원인 기본 배달료를 4000원으로 인상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수용하지 않을 시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목소리다.
실제 해당 배달앱은 9년째 기본 배달료를 동결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내는 배달팁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데 이는 배달대행업체가 끼어들면서 생긴 문제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배달대행업체들 간의 경쟁으로 인한 비용부담이 고스란히 음식점과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
의료계 입장에선 의약품 배송을 수용할 경우 기존에 없었던 문제를 공연히 떠안는 셈이다. 더욱이 배달팁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음식점 자체적으로 배달료 부담을 늘리는 상황을 보면 의약품 배송으로 약국에 생길 문제는 불 보듯 뻔하다.
■재진 의지 확고한 당·정…제도화 지연 시 시범사업부터
다만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재진 비대면 진료 의지가 더욱 확고한 상황이다. 비대면 진료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안정성을 위해 의료계 주장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데 뜻을 같이한 모습이다.
실제 복지부가 의협과 진행하고 있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재진 비대면 진료를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제도화 원칙으로 정했다.
복지위는 지난달 법안소위에서 재진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 4건을 병합심사한 바 있다. 하지만 참여위원 대다수가 이에 반대하면서 오는 25일 소위서 계속심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제도화 취지엔 동의하지만 안전성 측면에서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이들 위원이 제시한 반대 이유는 ▲130%로 설정된 현 비대면 진료 수가 조정 필요성 ▲비대면 진료 전문기관 문제 ▲선제적인 지역별 의료 격차 해소 필요성 및 한시적 비대면진료 평가·검증 ▲의약품 배송 비용 및 전자처방 ▲병·의원·약국 쏠림 문제 ▲진료비 증가 ▲대면·비대면진료 비율 조정 등이다.
이후 등장한 유니콘팜 법안도 이번 법안소위 함께 상정되기는 했지만, 재진에도 입장차가 분분했던 위원들이 초진에 동의할 것으로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있었던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에서도 복지부는 재진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다만 코로나19 위기단계가 하향되면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단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우려되는 만큼 이를 메꾸기 위한 시범사업을 제한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 김헌주 기획조정실장은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비대면진료 제도화는 대면진료를 보완하는 형태로 진행할 것"이라며 "의원급 중심, 재진 환자 중심, 비대면진료 전담 의원 제한, 플랫폼 업체 부작용 관리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제도화되기 전에는 시범사업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 제도를 연구하고 의료공백 최소화할 것"이라며 "다만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전면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뜻은 아니며 격오지나 섬, 감염병 환자, 노인, 장애인 의료접근성 제고를 위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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