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에서 의사 숫자에만 집중하는 의대 정원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 정원을 조절하는 동시에 의사 인력을 적절히 분배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7일 한국보건의료포럼은 제 3회 정기총회 기념 토론회를 열고 미래세대를 위한 의사인력정책을 논의했다. 토론자들은 관련 논의에서 명확한 해법을 찾기는 어렵지만 의사 숫자에만 몰두하는 식의 논의는 실질적이지 않다는 데 뜻을 모았다.
주제발표를 맡은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장성인 교수는 한국보건의료포럼이 진행한 '의사 인력 수요 및 공급 추계 연구'를 공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의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2042년경에 현재의 정원의 약 30%를 증원한 4000명을 배출해야한다. 다만 2059년경엔 이를 다시 현재 수준으로 감원해 3100명을 배출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인구 고령화로 2070년까지 외래 이용량 최대 1.5배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입원 이용량 역시 2.25배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종별에 따라 다르고 분배 역시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것을 고려하면, 2040년대까지 의사가 과잉되다가 갑자기 부족해지는 시점이 온다는 것.
다만 장 교수는 이 연구에서 의사들의 진료과목이 고려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고 전제했다. 또 정책 변화, 의료전달기술 발전·효율화 등으로 인한 수요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만큼 의사 수의 부족·충분·과잉을 판단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관련 대책으로 의사가 부족한 지역부터 의사 채워나가야 한다면서도, 이를 전체 의사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이르다고 전했다. 의사 증원은 의료비 상승을 야기하는 만큼, 기존 인력을 적절히 분배하는 방향이 낫다는 관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구대비 의사 수가 평균보다 높은 지역은 62곳인데, 이곳의 의사를 의료취약지에 보낸다고 해서 비중이 50%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인구대비 의사 수가 평균의 20~30% 미만인 곳이 있다며 여기부터 의사를 채워나가는 방식이 옳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유도하기 위해 의료취약지에 새로 유입되는 의사만 지원하는 방식은 역차별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코로나19 때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전담병원 간호사들의 근무강도가 세니 이들을 직접 지원하는 유인책을 사용했는데, 오히려 공공병원 간호사들이 역차별을 받으면서 자원 활용성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의료취약지에서도 이미 근무하는 의사들이 있는 만큼, 이들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짜야한다"고 설명했다.
지원 우선순위에 대한 제언도 있었다.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대 정원 논란을 단순히 증감의 개념이 아니라 조절의 측면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의사 인력 계획은 의사가 부족할 땐 늘리고 많을 땐 줄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
또 이는 사회적인 합의를 전제로 이뤄져야 하는 만큼 '의료인력관리지원원' 등을 설립하는 등 의사 인력을 실질적으로 관리할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적정 보상 수준과 관련해선 의료진에 대한 인정·존중·존경이 사라져 비재정적 비용이 증가한 상황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와 관련 장 교수는 "비재정적인 비용을 담당하던 의료인의 사회적 지위가 약화하고 소송 위험성까지 커져 재정적 보상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신 국민 입장에서 더 높은 의료 수준으로 보답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점을 빼는 의사보다 피부암을 보는 의사가 돈을 더 받는다. 위험성 있는 질환 보는 것은 그만큼 비용이 올라야 한다"며 "너무 비급여 분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가야하는 방향을 가치에 두고 비용에 따른 보상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임준 원장은 의사 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비필수의료 분야·병상 등 불필요하게 과잉된 의료영역을 줄이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봤다. 특히 병상 당 의사 수는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사용되는데, 병상 수가 많은지 적은 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것.
종합병원 병상 규모를 300개 이상으로 전환하고 법인화 하도록 하는 등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동일 진료권 소재 중소형 비영리법인 병원 간 합병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 이들이 책임의료기관 역할을 하게 하거나 민간종합병원을 공익참여병원으로 지정하는 방식도 유효하다고 봤다. 소규모 병원급 의료기관은 전문병원·재활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임 원장은 "필수의료로 응급·소아·감염 보장하겠다면 적극적인 병상 정책이 중요하다. 사립대학교병원과 민간중소병원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기존 공공병원 역량도 보강해야 한다"며 "총량 관리 기전을 마련해 수급 조정 기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본처럼 급성 병상을 줄여야 질 좋은 종합병원에 인력이 몰린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인센티브·규제 등 다양한 정책으로 자발적인 병상 증감을 유도해야지 강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사 양성·관리체계가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로 이원화 된 상황도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 의사 양성은 교육부, 관리는 복지부가 담당하는데 협의가 이뤄진다고 부족함이 있다는 것.
더욱이 의학전문대학원 등 소규모 의대 정책의 실패로 정부 불신이 생기면서 공공의대를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선 복지부가 양성까지 담당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등 방향을 다시 잡을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의사 양성 단계에서 분배를 고민하지 않는 정책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양성체계는 대형병원에만 유리한 방식으로 지역사회 중심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역균형선발을 늘리고 의료취약지로 의사를 많이 보내는 양성기관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등 목표를 정하고 일부 인원 육성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OECD 통계에 한의사가 포함된 만큼 이들의 정원을 의사와 전환하는 방식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임 원장은 "지금은 굉장한 위기 상황이다. 단순히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령화로 의료비 폭증. 분배 불평등 증가, 돌봄 문제 등은 의료비 폭증을 야기해 사회경제적 위기와 맞물릴 수 있다"며 "우리나라 의사 증가속도 아주 빠른 것은 아니다. 결국 공급량은 사회적 합의다. 의료 공급자인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비용 커진다는 개념에 대한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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