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과 동맹휴학 기간은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청소년기 시절 스스로와 세상에 무관심한 채, 사회와 주변인들의 인식에 따라 제 인생의 행보를 결정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니어그램 성격 검사는 사람의 성격을 본능, 사고, 감정 세 가지 영역의 상호 관계에 따라 분류합니다. 여기서 사고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 즉,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뜻한다고 이해했습니다.
저는 지금껏 사고라는 스위치를 꺼둔 채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제 자유를 헌납하고, 본능적으로 제 감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온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이때를 돌아보면, 본능과 감정의 테두리 밖으로 나오는 과정으로 20대 초중반의 시기를 기억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빌려 저라는 사람이 지금껏 쓰고 있던 자아라는 가면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저와 세상을 바라보게 된 일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자기성찰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부하고, 스스로 수정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 길은 단순히 지성으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제 영혼 깊숙이 닿아 제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앞으로 삶을 살아갈 때 가질 세계관을 조립하는 과정입니다.
이 길목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만날 때도 있고, 인격적 불완전함을 마주칠 때도 있습니다(선악의 기준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요).
다행스럽게도 제 영혼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제가 가진 생각과 감정의 기원(스키마, 대전제)이 이성적으로 접근했을 때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제가 생각하는 이상(선)과 현실(내면세계)가 충돌할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 이성의 도움을 빌려 수정하면 되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애석하게도 제 이성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선악의 절대적 기준이 누구인가? 선악의 절대적 기준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원칙 즉, 양보할 수 없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오는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자는 이를 신이라고 하고, 이성이라고도 하고, 감정이라고도 합니다. 각각은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을 창조해냅니다. 유신론적 세계관, 자연주의적 세계관, 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관이 이것이죠. 세계관을 사상이나 신념으로 간략하게 표현해보자면, 한 인간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정립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믿는 사상과 신념, 세계관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즉,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세계관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세계관을 스스로 수정/보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계발될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선악이 실존한다면, 그것의 근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 그 이면의 진짜 믿음은 사실에 기초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틀렸다면 어떻게 고쳐나가실 겁니까? 고침의 방향이 선이라고 믿는다면, 선악의 근거는 어디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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