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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호 칼럼] 환자 죽었는데 의사 형사처벌 안 받느냐고?

발행날짜: 2024-12-26 09:57:16

소아청소년과를 붕괴의 위기로 몰고 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저출산에 의한 소아청소년 인구의 급감이겠지만, 이토록 갑작스럽고 빠르게 소아청소년과를 비인기과로 만들어버린 결정적인 사건은 이대목동 사건이었다.

당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언론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의료진을 살인자로 내몰았고, 경찰은 수사를 핑계로 신생아들의 생명을 살리는 공간을 오염시키고 짓밟았다.

당시 5000만 국민들은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수갑을 차고 구속되는 광경을 보면서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지만, 암 투병 중이었음에도 신생아 진료에 매진했던 선배 의사가 수갑을 차는 모습을 본 이 땅의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은 소아청소년과를 기피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해당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국민들은 이미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의사들은 언제든 수갑을 찰 수밖에 없는 필수의료의 차가운 현실을 목도하고는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대목동 사건뿐만이 아니라 성남 횡격막 탈장 어린이 사망사건, 과다출혈 산모 사망 사건 등에서 보듯이 지금도 의료 행위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는 의사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의료 행위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의사들은 민사적으로도 천문학적인 배상책임까지 떠 안고 파산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당신이라면 편하고 안전한 일과 어렵고 위험한 일 중에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 심지어 어렵고 위험한 일이 보수까지 높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다는 당연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그 실체도 명확하지 않고, 사람마다 기준도 다른 '필수의료'만이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용어 자체에 필수적인 성격이 포함되어 있는 '의료'의 위기.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의 위기를 유발한 여러 원인 중에 민형사상 책임의 증가를 뜻하는 '사법 리스크'가 중심에 있다. 의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법 리스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 이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수 억원의 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기반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거나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료 분야를 대상으로, 치료 결과가 나쁜 경우에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마구잡이로 적용해서 의사들을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 치료 결과가 나쁜 것이 과연 죄가 되는 것이 맞는 일일까?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의료 행위 중 발생한 의료 과오에 대해서 의사를 형사 처벌한 경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심지어 미국은 주에 따라서 민사 배상액의 한도(Cap)를 정해 놓은 곳도 있다. 영국에서 6년간 4명의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받을 때, 대한민국에서는 670명이 해당 죄로 처벌되었다는 통계는 이미 너무 유명하다. NHS 진료 대기 중 사망자만 12만명이라고 알려진 영국 마저도 이렇다는 사실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의사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이 얼마나 남발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정부는 의사들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의료사고 보험공제를 들고 나왔지만, 이는 문제의 진단부터 잘못되어 처방된 잘못된 해결책이다. 실제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에게 직접 돈을 내고 보험공제를 통해 배상을 하면 형을 감경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죄를 인정하라고 하는 것이라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대로 국민 입장에서도 의사들이 돈으로 형을 면제받거나 감경 받는다고 하면, 그 제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료분야 형사 책임에 대한 해결책은 Global Standard에 맞게 선의에 의해 행해진 의료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 과오는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법과 규정을 정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법과 규정을 통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고의성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여 송치하고, 검찰 기소 단계에서도 결과가 아니라 의도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소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판 단계에서는 의학적 특수성을 인정하고, 명확한 증거에 기반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재판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의료 감정은 의협을 통해 객관성과 중립성이 담보된 의료 감정단에서 맡아서 수행하도록 해서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건강보험이라는 단일공보험 제도를 유지하면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들에 건강보험 진료를 강제하고 있다. 즉, 건강보험 진료에 한해서 대한민국 모든 의료기관들은 공공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 업무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진료 중 발생한 배상책임에 대해서는 정부나 건강보험공단이 책임지는 것이 합당하다. 건강보험 진료 이외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민사 책임에 대해서는 보험공제를 도입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난 6월 있었던 MBC 백분 토론에 경실련 대표로 참석했던 모 인사는 "환자가 죽었는데 의사가 형사처벌을 안 받아요?"라는 발언을 했다. 이 말은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료 과오에 대한 왜곡된 사고와 위기에 빠진 의료를 낭떠러지 앞에서 붙잡고 있는 의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넓은 간극을 보여준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모두 떠나가버린 나라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타인을 증오하는 증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루빨리 서로에 대한 증오를 멈추고 합리의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 생명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결단하고 바꾸어야 한다.

2024년 12월 26일
제43대 대한의사협회장 후보
기호 3번 주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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