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에서 정형외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정 모원장은 난데없이 A손해보험회사가 자신을 보험사기 혐의로 고발했으니 경찰서에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A손보사의 가입자인 교통사고 환자가 실제 입원하지도 않았는데 입원한 것으로 청구했고 여기에 의사가 공모를 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환자는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에 입원 첫날 옷가지 등을 챙기기 위해 저녁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집에 잠시 들린 것이고 A손보사 직원이 그 틈에 빈 병상을 촬영해 경찰에 고발한 것이었다.
◆보험사의 '의원 길들이기' = 문제의 발단은 정 원장이 평소 그 지역의 다른 의원들과 비교해서 평균적으로 자동차보험수가를 더 많이 청구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그 지역의 경우 관행적으로 자동차보험환자 초진의 경우 1인당 일당진료비를 3~4만원선으로 제한하고 있었는데 정 원장은 이를 어기고 5~6만원까지 진료비를 청구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몇 달전부터는 손보사 직원이 의원을 찾아와 “자꾸 물을 흐리지 말라”느니 “다른 의원들까지도 덩달아 진료비를 많이 청구하면 책임질 것이냐”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지난달에 노골적으로 “계속 이러면 과잉진료 혐의를 찾아내서 경찰에 고발하겠다”며 대놓고 위협을 해왔다는 것이다.
결국 보험사 직원은 지급되는 자보수가를 절감하기 위해 정 원장의 의원을 본보기로 삼아 고발한 것이다.
정 원장은 일종의 '보험사의 의원 길들이기' 희생양이 된 셈이다.
◆자의적인 일당진료비 기준 = 그러나 과연 보험사의 주장대로 정 원장이 과잉청구를 일삼은 것일까. 문제는 오히려 주변 지역의원들이 일종의 ‘과소 청구’를 해왔다는 점이다.
대한정형외과개원의협의회 이동인 보험이사는 “일반적인 자동차사고 환자의 경우 그냥 눕혀놓고 밥만 먹이지 않는 한 결코 일당진료비 3~4만원이 나올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입원료 19,600원에 식비 4,110원씩 세 끼만 해도 12,330원입니다. 이것만 해도 3만원이 넘어가죠. 여기에 표층열치료·심층열치료·간섭파 등 최소한의 물리치료만 해도 수가는 6,600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주사 맞고 방사선 촬영·부목만 해도 합치면 진료비가 6~7만원을 넘어가요. 대체 어떻게 초진환자를 3~4만원에 청구합니까? 이보다 중증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어쩌구요.”
결국 실제 진료 행위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보수가 절감이라는 목적으로 보험사가 자의적으로 정해버린 ‘일당진료비’라는 족쇄에 의원들이 얽매여 있는 현실이다.
“자동차보험수가가 정해져 있으나 실제 이는 허울에 불과하고 보험사는 일당진료비라는 어이 없는 기준으로 무자비한 삭감을 행하거나 고의적으로 수가 지급을 미룬다”는 것이 이동인 이사의 설명이다.
때문에 의원들의 선택은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과소청구를 하거나, 혹은 환자에 필요한 진료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신껏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보험사와의 밀착된 관계 속에 얽혀있는 경우도 있지만, 소신껏 진료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으려는 다수의 의원들은 손실을 각오하고서라도 일종의 '과소 청구'를 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보험사도 난감...제도정비 시급 = 사실 더 근본적 문제는 보험사들이 아니라 입원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보상금을 위해 억지로 입원을 하는 등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의료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보험사들의 입장에서도 이런 불필요한 재정 지출을 벌충하려다 보니 자보수가를 갖고 의료기관들을 압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담당 보험사 직원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자신이 담당한 의원의 청구액이 낮으면 낮을수록 인사고과에 유리하게 반영되고, 다른 의원보다 높을수록 인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때문에 직원들은 진료비를 많이 청구하는 의원들이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다. 이러니 자보수가를 많이 청구하는 의원의 경우 담당자가 자주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험사 나름대로 그런 속앓이가 있다하더라도,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를 일당진료비라는 단순 기준을 갖고 재단질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종훈 전문의(정형외과)는 “보험사가 의료기관을 통한 치료비의 절감에 매달리는 것으로는 절대 자동차보험의 고비용 구조를 탈피할 수 없다"면서 "보험사에 이익이 되게끔 행동을 취하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돌아가게 하는 제도적 보완에 힘을 쏟아야만 할 때”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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