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직장생활에 뛰어든 지 이제 갓 1년 남짓한 초보 기자가 어제(23일) '절도 혐의'란 것으로 경찰서에 불려가 장시간동안 형사에게 취조를 받고나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는 다른 세상살이의 ‘만만치 않음’이었고, 두 번째는 ‘대한의사협회’라고 하는 단체의 무서움이었다.
학교와 부모님께 나는 이렇게 배웠다. 기자라고 하는 이는 남보다 먼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존재하는 이라고. 또 기자는 독자들이 등뒤를 지켜주고 있기에 언제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고.
하지만 ‘의협이 공개하기를 원하지 않은 자료’를 먼저 공개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으면서, 나는 그런 젊은 시절의 신념이 순간 흔들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진실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기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그리고 독자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일고의 의심도 없이 행했던 나의 행동들이, ‘절도’니 ‘잠입’이니 ‘절취’니 하는 저열한 언어들과 함께 서너 장의 조서 속에 담겨지는 것을 보며 솔직히 속으로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가정과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는 것에 익숙해진 한 사회 초년생에게는 힘겨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 하나 앞에 나서 나를 지켜 줄 수 없는 이 세상살이의 녹녹치 않음이 뼈 속 깊숙이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런 한 젊은이의 인생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꿔놓을 수도 있는 대한의사협회라고 하는 단체의 무서움이다.
회원들의 끝없는 민원과 산적한 현안들 속에 늘 바쁜 업무 일정 중에서도, 단 3일 만에, 그 짧은 시간에 지체 없이 행동에 옮기는 현 의협 집행부의 모습을 보며 이 단체의 저력을 새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 80% “약사 조제내역서 꼭 필요”’란 기사는 사실 기자 나름대로 의협 회원들이 관심을 많이 가질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고, 그 조사결과 자체가 의협 회원들에게 추호도 불리한 내용이 아니었다.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도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협 집행부가 이처럼 바쁜 정국에서도 단 3일만에 신문사에 출입금지 공문을 보내고, 전 지역 회원들에게는 취재협조 말라는 지시를 하달했고, 급기야 처벌 가능성이 미미한 사안을 집어내 형사고발까지 마친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자를 취조한 담당형사조차도 “심지어 경찰서 수사과에 기자가 들어와 사무실 서랍을 열고 자료를 가져간다 해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처벌할 수는 없다”면서 “이런 류의 사건은 처벌된 전례도 없고, 언론을 길들여 보려는 의협의 제스처 정도로 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정도니, 이번 의협의 대처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기자는 다만 현 의협 집행부가 회원들을 위한 대정부 활동과 메이저급 거대 언론과의 맞대응에서도 그 놀라운 신속함과 '무서움'을 견지하길 바랄 따름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넋두리를 늘어놓는 꼴이 된 것 같아 독자들에게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
이글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인생후배가 난생 처음 취조란 것을 받고 난 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과 세상에 대한 실망 뒤에 쏟아놓는 부질 없는 하소연쯤으로 이해해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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