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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로 승부하는 의료기관

김선민
발행날짜: 2009-01-12 06:24:03

심평원 김선민 상근평가위원(가정의학과 전문의)

"환자는 KTX 타고 서울 가고, 인력차등수가에 영향을 미치는 간호사는 단체로 기숙사 있는 서울 병원에 가고, 큰 병원들 병상 수 늘이면서 의사들도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기고…… 여기는 병원 건물만 남게 되었습니다"

건강보험급여적정성 평가 결과 설명을 위해서 지난 해 후반 방문했던 지방 병원의 경영진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어려움이었다.

생각을 끝까지 몰아가 보면 더 미궁에 빠지곤 한다. 이런 현상이 계속 되어도 우리나라 의료는 괜찮은 것일까? 만일 계속 된다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환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방에서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지역에 건전한 거점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급성 심근 경색증이나 뇌졸중 같은 병으로 갑자기 쓰러진 환자가 멀리 수도권에 있는 병원에 가다가 나빠지는 것, 암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대기열 긴 병원에서 기다리다가 수술 시기를 놓치는 것, 당장 눈에 보이는 이런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술을 받고 난 환자가 수술 후 진료를 받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지역 병원에 종사하는 질 높은 의료인력 부족, 지방의 고용기회 저하, 나아가 환자와 의사 사이에 견고하게 뿌리내려야 할 인간적 신뢰감의 결여까지를 생각한다면 지역 병원이 문을 닫게 될 경우 파생하는 문제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여기까지는 생각이 대개 비슷한데, 그 다음 해결 방안을 이야기할 때에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간혹,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지방 병원들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미국의 공공영역 보험자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CMS(Center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에서는 2000년대 이후 전국의 병원들을 대상으로 질향상 시범사업(Hospital Quality Incentive Demonstration)을 실시했다.

자발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한 이 사업에 들어가는 병원들은 폐렴, 급성심근경색증, 슬관절 치환술 등의 의무기록 자료를 보고 환자 상태에 대한 정보를 일정한 서식에 맞게 입력해서 공공기관에 보내야 한다.

이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게 되면 CMS가 병원에게 지불해야 할 액수 가운데 0.4%를 차감하게 된다. 의무기록을 고의로 혹은 실수로 잘못 제출했는지 여부를 보기 위해 별도의 확인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확인 결과 제출한 자료에 문제가 있으면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재정적 효과를 거둔다.

이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큰 의문점은, 이런 사업에 어떤 병원이, 왜 참여할까 하는 점이었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0.4 %를 차감한다고 되어 있으나, 별도의 재원에서 주는 돈을 차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료를 제출한 만큼 돈을 더 주는 셈이다. (그들은 이런 방식을 Pay for Reporting 이라고 부르고 있다.)

96%의 병원이 사업에 참여해서 결과 산출하고 자료 제출에 따르는 비용을 보상받았다고 한다. 자료 안 내고, 돈 더 안 받으면, 자 병원의 안 좋은 결과가 공개될 우려도 없을 것인데 왜 굳이 그런 사업에 참여하나 하는 것이 궁금했다.

그 사람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평가에 참여하지 않으면 병원의 결과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데, 그렇게 될 경우 소비자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불투명한 병원으로 여기게 되어 환자가 가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명성(reputation)이 실추되는 결과라고 했다.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한국의 환자들이 미국인들에 비해 못하다고 볼 수 없다. 문맹률이나 인터넷 이용과 같은 지표들에서 한국인들은 미국인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어디든지 하루에 갈 수 있는 한국에서 오히려 선택은 자유롭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환자들이 멀리 떠나는 이유는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KTX 타고 떠나는 환자를 잡기 위해서는, 지역 병원의 질적 수준이 이름난 대형병원에 비해서 못할 것 없다는, 아니 오히려 더 낫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결과가 좋은 병원" "소비자 신뢰 대표브랜드 상" "환자 중심의 병원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지하철 병원 홍보판이나 인터넷 병원 소개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이다. 최근 수년 사이 상황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평가의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면 대부분의 병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병원이 이미 많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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