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일하다 지난 달 21일 소집해제 된 정 모씨는 개원을 준비하며 사사건건 부딪히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에 말을 빌리면 "개원은 고생스럽다기 보다 고통스러운 과정이다"는 것. 정 씨는 개원이 정답이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그래도 실패를 먼저해야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개원을 결심했다.
주위 만류에도 개원하는 이유는?
처음엔 임상강사도 생각해 봤지만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전문의가 포화상태인 마당에 시간을 들여봤자 별다른 메리트가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봉직의도 마찬가지였다.
정 씨는 "봉직의 페이가 점점 내려가 강남의 피부과의 경우 월급이 600만원에서 700만원에 불과한 실정도 마음에 걸린다"면서 "개원 후 실패를 빨리해야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불안한 심정을 드러냈다.
개원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원에 실패하더라도 봉직의로 갈 수 있다는 것. 봉직의를 먼저 하고 나중에 개원했다가 실패하면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다.
실패를 미리 생각하고 개원을 준비한다는 정 씨. 그가 처음부터 미래를 어둡게 전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려움은 알아보기 위해 소집해제 된 후 그의 일상을 동행했다.
쥐꼬리 대출 자금, 처음부터 발목
소집해제 후 정 씨는 나름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5일 정 씨는 집 인근에 위치한 A은행으로 발길을 향했다. 대출 가능한 자금 규모를 알아보기 위해 은행을 찾은 것. 상담원과 10여분 간의 상담이 끝나자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의인 그에게 최대 1억 5천만원이 대출 자금의 한계라는 말과 함께 금리는 5.6%라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 씨는 "개원 자금을 3억원에서 5억원 정도로 잡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적은 대출 금액에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신용대출이나 주택담보 대출까지 생각해봐야 겠다"고 전했다.
입지 선정에 6개월…"마땅한 자리 못찾아"
개원 자금은 입지 선정에도 발목을 잡았다. 서울의 비싼 임대료와 포화 상태에 이른 입지 때문에 지방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마저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 공보의 시절부터 틈틈이 입지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게 벌써 6개월 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경기, 수원 지역부터 대전까지 가봤습니다. 임대료가 싼 곳은 유동인구가 없고 상가나 배후 세대가 있는 곳은 지방이더라도 의원들로 꽉 차 있더군요. 입지 선정이 쉽지 않아 양도·양수 매물을 생각 중이지만 고정 환자를 확보한 곳은 금액이 턱없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가 현재의 개원 대출 자금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제한적이다. 개발이 덜 된 곳을 노릴 수밖에 없는 것. 정 씨는 "유동인구가 곧 환자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차라리 6개월 정도를 더 돌아보겠다"고 결정했다.
"한푼 아끼려 인테리어까지 직접"
30일 강남구 일대를 돌며 인테리어 업자를 만났지만 이 역시 좌절의 연속이었다. 업자는 몇가지 인테리어 시안을 보여주며 시공 비용으로 1평당 80만원에서 100만원의 비용을 요구했다.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한 업체 사장은 "의사는 돈이 많지 않냐. 인테리어에 돈을 아끼면 안된다. 환자의 눈길을 끌려면 인테리어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1평당 100만원을 시공비로 잡으면 40평에 어림잡아 4천만원의 돈이 필요했다.
정 씨는 업체를 나오며 "혼자 설계사와 목수를 구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전했다. 대출 자금 마련이 안되니까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과 열흘 …"개원은 고생보다 고통"
"마땅한 조언을 해줄 선배가 없는 저로서는 개원이란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에요."
소집해제 후 열흘이 지나면서 정 씨는 개원에 대해 "고통스럽다"는 표현을 자주했다.
대출부터 입지선정,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선택, 직원 채용, 임대료까지 신경 쓸게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1년을 더 준비해서 개원을 해볼 생각입니다. 만일 운이 좋아 개원이 된다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직원 월급을 줄지, 마케팅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지 걱정이 됩니다. 살벌한 의료 환경에서 먼저 개원한 선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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