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8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통합 만성질환관리제를 내놨지만 의료계 내부에서 분분한 이견이 제시되며 내부갈등이 일고 있다.
외과계가 소외감을 드러내며 내과계와 외과계 간 갈등이 인데 이어 대한의사협회가 원점에서 재추진을 요구하며 사실상 보이콧 입장을 보이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등 기존 만성질환관리 사업들을 통합하는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을 수립했다.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참여자 모집이 시작되는 통합 만관제는 의원급에서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관리의 중심을 잡는다는 목표로 참여 의원에게 신설 수가를, 환자에게 바우처를 지급해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현재 복지부는 시군구의사회 주관으로 진료과와 무관하게 전국 동네의원 대상 신청을 받을 예정이며 환자관리료 신설로 월 300만원 이상 수가 보전을 검토 중이다.
사업 대상은 고혈압과 당뇨 환자 30만명으로 추려지며 예산은 의원당 연 300명 씩 동네의원 1000개소 참여로 최대 826억원이 투입되게 된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내과계를 중심으로 하는 일차의료기관들은 반색하는 모습이다. 월 300만원 이상의 수가 보전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경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내과계 의사회 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만관제를 기본으로 하는 많은 시범사업들이 추진됐지만 제대로 본 사업으로 진행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며 "대부분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예산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는 8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시작하는 만큼 제대로 된 만관제 모델을 정립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정부와 국민, 의료계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과계 중심의 설계로 소외감을 드러냈던 외과계도 정부가 참여를 원하는 모든 의원으로 대상을 넓히면서 반감이 조금은 누그러 드는 모습이다.
과거 만관제 등이 고혈압, 당뇨 등에 대한 진료 경험과 실적을 조건으로 내세운 것에 비해서는 그나마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A외과의원 원장은 "그나마 정부가 일차의료기관 전체로 대상을 확대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하지만 여전히 일차의료 활성화 정책이 내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만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내외과 갈등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의사협회와 전국 16개 광역시도의사회가 통합 만관제의 주체를 문제 삼으며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의협과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통합 만관제 시범사업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 의협의 입장. 처음부터 의협과 다시 논의해 사업을 짜야 한다는 의견이다.
의협과 시도의사회들은 "지금까지 의협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시범사업을 안착시킨 노력을 간과한 채 복지부가 사전 논의도 없이 질본과 공단, 심평원 등으로만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추진단을 구성했다"며 "의료계의 의견수렴없이 일방적으로 시범사업 계획을 추진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협과 16개 시도의사회는 이미 짜여진 각본 속에서 시범사업에 일차의료기관을 들러리 서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즉시 현 추진단을 해체하고 의료계와 정부가 동등하게 논의할 수 있는 구조로 추진단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특히 의협과 시도의사회들은 이번 사업의 추진 방향이 잘못돼 있다며 원점에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만성질환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설정됐다는 지적.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시범사업에 대한 불참과 참여 거부를 공식화하겠다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
의협은 "전체 만성질환관리에 대한 장기적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이번 시범사업을 재검토하고 고혈압, 당뇨 외에 다른 질환으로 사업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며 "교육상담료 적용 방안 등 체계적 추진을 위해 의협과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동네의원 케어 코디네이터 고용을 위한 건강보험 재정 투입이 아닌 국고지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케어코디네이터가 의사의 진료범위를 침해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러한 요구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의협과 16개 시도의사회는 통합 만관제 시범사업의 참여를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의협의 의견을 두고서도 의료계 내부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 만관제를 둘러싼 분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 만관제를 둘러싼 진료과목별 온도차가 생각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내과계 의사회 관계자는 "지금 의협이야 말로 제대로 의견 수렴을 하고 보이콧을 얘기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며 "만관제 사업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첫 걸음이며 고사직전의 개원가에 단비같은 사업"이라고 털어놨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사업을 의협이 독단적으로 보이콧을 선언한다면 되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며 "보완책을 제시한다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보이콧이 왠말이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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