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의대 의학과 6학년 정호민|금요일은 항상 설렌다. 실습이 끝나면 옷을 갈아입고 얼른 집으로 뛰어간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넷플릭스에 로그인하면 벌써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다. 방금까지도 병원에 있었지만 율제병원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나의 마지막 의학드라마는 골든타임이었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참 재밌었지만 이후 한국 의학드라마는 한편도 보지 않았다. 매년 의학드라마는 새롭게 나왔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고독하고 능력 좋은 천재 의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언제나 자극적이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달랐다.
그곳엔 내가 봤던 모습이 있었다. 의사도 아니고 환자도 아닌 실습생으로 봤던 시선 말이다. 교수, 레지던트, 인턴, 환자 그리고 보호자의 모습이 화면 속에 사실적으로 그려져 첫 화를 봤을 때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에 가깝다 생각했다.
현실은 한 명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사람'이 있다. 이들을 사람냄새 가득하게 풀어놓는 에피소드를 보고 있으면 마음도 절로 따뜻해진다. 어떤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았는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볼 때면 혼자 한창 깔깔대다가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휴지를 찾는다.
드라마가 현실적이다 보니 학생으로서 배울 점도 많았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5명의 젊은 교수들은 저마다 살아온 배경, 전공, 성격이 모두 다르지만, 이 다섯 명 모두 의료인문학에서 글로 배웠던 좋은 의사의 표본이었다.
의사는 환자의 질환만 다루는 게 아니라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삶을 이해하고 해결해주어야 한다. 의사는 공감능력으로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표현방식은 달라도 에피소드마다 교과서를 옮겨놓은 듯한 주인공들의 모습에 환자에게 무뚝뚝하고 차가운 장겨울 레지던트 선생님이 변해가는 모습이 저절로 이해가 됐다.
의대생이라면 이 드라마를 꼭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실습을 하고 봤으면 좋겠다. 율제병원의 이야기를 본인의 실습일기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고, 실습생의 눈으로 보았던 모습, 의학이 환자에게 실제로 적용되는 모습을 화면에서 보면 누가 나의 시선을 화면에 옮겨놓은 듯한 재미도 있다.
의대생이 아니더라도 모든 국민이 이 드라마는 봤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의사라는 직업이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알 수 있듯이 분명 의료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며 언제나 그 중심엔 의사가 있다.
출혈이 심해 응급 수술을 받던 환자가 걱정되어 "교수님 그 환자 살았나요?"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응 당연히 살았지."라고 말하는 교수님의 모습. 일과가 끝나고 밥을 먹다가도 응급콜을 받고 자연스럽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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