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졌다. 서류 조작으로 인한 품목 판매 정지 사태. 이번엔 무려 62개 품목이 품목허가 취소 대상이 됐다.
의료기기 수입업체 메드트로닉은 의료기기 제조소의 제품 표준서를 직접 작성한 후 제조소의 담당자 허위 서명을 제출하거나, 과거 제출한 서류의 관리 번호 및 개정 일자를 수정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가 덜미를 잡혔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제출서류와 다른 세포주를 사용했다가 세계 첫 골관절염 세포 유전자 치료제라던 인보사의 허가 취소 굴욕을 맛봤다. 국내 1호 보툴리눔업체 메디톡스도 서류를 조작, 허가 내용과 다른 원액을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식약처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간 식약처의 허가 과정에서 검증 수단이 부재했다. 제약사나 의료기기 업체가 허위 서류를 제출해도 이를 검증하거나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없었다. 쉽게 말해 업체가 작정하고 식약처를 속이려 들면 속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결이 다르다. 지난 6월 식약처는 메디톡스 행정처분을 결과를 발표하며 '재발 방지책'에 공을 들였다.
식약처는 제조·품질관리 서류 조작을 근절하기 위해 의약품 제조·품질 관리기준(GMP) 중 데이터 신뢰성 보증 체계를 집중적으로 강화한다고 밝혔다.
데이터 작성부터 수정, 삭제, 추가 등 변경이력을 추적할 수 있는 관리지침을 마련·배포할 계획이며, 시험결과 뿐만 아니라 시험과정 전반에 걸친 데이터를 관리하고, 특히 허위·조작 가능성이 높은 시험항목을 집중 관리하겠다는 게 당초 식약처의 의지.
그런데 발표가 있은지 불과 한달 보름만에 메드트로닉의 자료 조작 사태가 터졌다. 허위 자료 적발이 지속되면서 식약처가 이를 사전에 검증할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안 잡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국내 첫, 세계 첫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신약, 제제에서도 부실이 드러나는 마당에 제네릭이나 개량신약, 의료기기엔 얼마나 더 많은 오류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다. 실제 공익제보자의 신고나 코오롱생명과학의 '이실직고'가 없었다면 취소된 품목은 지금도 여전히 판매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쉬운 사전 검증은 차치하고 판매중이던 품목에 대한 허위 내역을 식약처 스스로 발견했다는 걸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식약처는 부랴부랴 유사 사례에 대한 무작위 검증 및 문서에 대한 사전 검토 단계 도입, 심사자료 유효성 확인을 위한 제조사 자료 제출 방안을 꺼내들었다. 규제방안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머쓱한 느낌마저 든다.
한달 전에 기자 수첩으로 "두번 속으면 바보, 세번 속으면 공범…식약처는?"이라는 글을 썼다. 이렇게 빨리 같은 주제를 다시 다루게 될 줄은 몰랐다. 자료 조작에 따른 신뢰도 하락은 비단 업체만이 짊어질 멍에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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