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실상 엔데믹을 선언하며 2년간 이어졌던 이른바 K-방역이 막을 내리고 있다.
수없이 기준이 변경됐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폐지됐고 이에 맞춰 선제검사를 포함해 선별진료소 운영도 사실상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급격하게 변경됐던 사안들도 정리가 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가검사키트다.
2년간 선별진료소 중심의 PCR 검사를 고집하던 정부가 급작스레 자가검사키트 활용을 권고하면서 일었던 대란이 정리되고 있는 것. 실제로 한때 3만원에 육박하던 자가검사키트 가격은 이제 2천원까지 내려갔다.
길고 긴 터널의 끝을 향해가고 있는 만큼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만 쓸쓸하게 K-방역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도 있다. K-방역의 선봉으로 꼽혔던 체외진단기업들이다.
정부는 PCR 중심에서 자가검사키트로 급격한 정책 변경을 추진하면서 체외진단기업들에게 서둘러 도움을 요청했다.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려달라는 것. 이에 따라 이들은 이에 맞춰 생산 설비를 확충하며 공급량을 늘리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여전히 품절 대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곧바로 칼을 빼들었다. 자가검사키트에 대한 가격과 유통을 정부가 통제하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온라인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개당 6천원에 인당 5개 이하 구매, 유통 채널을 약국과 편의점으로 제한하고 키트의 수출을 막은 것이 정책의 골자다.
이렇게 자가검사키트가 사실상 조달 물량으로 통제되는 상황에서도 체외진단기업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수출을 포기한 채 대용량 포장 설비를 늘리며 국내 수요에 대응했다.
그러나 불과 두달여만인 현재 정부가 엔데믹을 선포하며 이러한 정책을 원점으로 돌리면서 이들 기업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불과 두달 만에 돌이킬 사안을 왜 요구했느냐는 불만과 함께다.
실제로 사실상의 엔데믹이 선언되며 자가검사키트의 수요는 마치 절벽을 그리듯 급하락하고 있다. 정부의 요청에 맞춰 대용량 키트를 폭발적으로 찍어 대던 기업들 입장에서는 산더미 같은 재고만이 남게 된 셈이다.
더욱이 국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수출 물량을 통제하면서 그나마 손익 균형점을 맞춰주던 수출액도 크게 줄어있는 상태다. 게다가 정부가 요구했던 대용량 키트들은 해외에서 수요가 없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결국 이를 낱개로 다시 포장하거나 덤핑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일선 약국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대용량 키트를 확보해 소분해 판매하던 약사들도 불만이 한가득이다. 지금까지 소분하는 인건비를 감당하면서까지 이를 확보하려 노력했는데 이 또한 모두 재고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같은 값이라면 개별 포장된 제품을 선호하지 누가 비닐봉투에 소분된 물건을 찾겠느냐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자가검사키트 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대유행 초기 비접촉식 체온계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정부는 의료기기 수입 기업들에게 이에 대한 확보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일정 부분 수요를 채우고 나자 어렵게 구해온 그 물건들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들 기업들은 정부의 요청에 따라 구해온 물건이니 조달 물량으로 원가라도 보존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부 기업들은 수십억원의 물건이 아직도 악성 재고로 남아있다.
물론 이러한 책임이 온전히 정부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이 이어진 만큼 누구도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신뢰다. 언제라도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속에서 무너진 신뢰는 큰 구멍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한 체외진단기업은 정부의 요청에도 자가검사키트를 아예 생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에 이미 한번 데어본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말 그대로 정부 주도 K-방역이 남긴 상처들이다.
그렇기에 엔데믹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이라도 이러한 상처들을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제2의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때 수없이 많은 악성 재고를 떠안았던 기업들이 정부의 요청에 과연 응답할까. 정부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끝까지 자가검사키트를 생산하지 않았던 그 기업의 악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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