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겨울을 기다렸다. 겨울은 올해 어지간히 바빴던 것 같다. 거리의 은행나무들이 짐을 모두 덜어내고 앙상한 몸을 드러낼 때조차 오지 않았다. 나는 거리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보며, 말로만 뱉던 기후 위기가 이렇게 와버린 걸까, 더 이상 눈을 볼 수 없는 걸까, 그런 망상에 빠져 길을 걷곤 했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추워져 반바지와 슬리퍼로는 차마 밖을 내다닐 수 없을 때, 그제야 안심하며 패딩 위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상자에 담긴 겨울옷들을 하나둘 꺼내며 쌓였던 먼지 속에 담긴 시간을 떠올렸다.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 우물우물 씹은 뒤 삼키는데,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분명 바쁘면 바쁨 속에서 행복을 찾고, 여유로우면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올해를 보냈다.
매일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믿었는데 모아보니 이토록 버거운 한 해였다니, 놀라웠다. 물론 지금을 잘 살아냈음에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나는 한해가 끝나감을 마냥 웃으며 바라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부딪치고 다퉜지만, 작년까지 대부분의 잡음은 문밖에 머물렀다. 올해는 달랐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위기,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들, 동덕여대 시위, 트럼프 당선,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 여러 키워드가 스피커를 타고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심지어 의정 갈등은 아예 문고리를 부수고 들어와 집을 마구 헤집었다. 세상이 갑작스럽게 몰락하고 있는 건지, 이제야 의대생의 작은 일상에서 튕겨 나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본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위에서 던진 키워드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다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중에도 가장 부정적인 감정인 혐오가 세상에 만연하다는 사실이었다. '한남충 동현이 분탕치러 왔노 ㅋㅋ', '폭도들 감옥에 집어 처넣어라' 같은 댓글은 흔하디 흔했고, 서로를 '0찍충, 00지역 출신' 등으로 규정짓고 공격했다.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혐오하고, 누군가에게 혐오 당하는 순간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것은 썩 불쾌한 경험이었다.
원초적인 혐오를 처음 마주하고 떠오른 생각은, 대체 이런 감정이 왜 만연한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폭력적이면서 파괴적이었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무의미한 감정이었다.
허나 인터넷과 현실에서 혐오가 표출되는 여러 순간을 목격하며, 혐오가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그 전염성을 알게 됐다. 남을 짓밟는 순간에 느끼는 쾌락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였기에,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쾌감에 몸을 맡겼다.
관계가 얕아질수록 쉽게 말했고, 실체가 없는 대상에게 더 가혹했고, 익명과 같은 가면을 쓸 수 있다면 주저 없이 과격해졌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는 SNS와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덩치를 불렸다. 기술은 혐오에 날개를 달아줬다.
나는 오래지 않아 혐오가 무지에서 비롯됨을 깨달았다. 사회는 계속해서 복잡해졌고, 개인이 이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심지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단면만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단면 앞뒤에 놓인 다양한 맥락과 뒷사정은 조명받지 못한 채 지워졌다. 무지한 영역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 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세상을 재단하고 평가하면서 혐오가 시작됐다.
이를 멈추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돌을 던지기 전에 일단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혐오하는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현재 직업을 명시하는 그의 얄팍한 프로필과 우리의 혐오를 유발했던 행위가 전부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문장 몇 개로만 정의되던 그가 맥락을 얻는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위를 한 것인지,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를 맹목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이해할 수는 있다.
안타깝게도, 의대생인 내가 공대 대학원생의 생활을 듣고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은 단박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다양하고 이질적이었다. 이슈들도 똑같았다. 군인 장교들의 처우가 문제라는 얘기를 듣고 국방부에서 내놓는 수많은 자료를 다 읽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알고리즘에 뜨는 뉴스나 기사를 읽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내놓을 수 있는 여유의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느긋하게 들어줄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떠올렸다.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글. 그건 쉽게 써 내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몇 가지를 꺼내어 알맞은 단어와 문장을 찾아주는 노력, 그 과정에서 골몰하는 흔적이 글에는 그대로 담길 수밖에 없다.
글은 쓴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담아낸다는 말처럼, 읽고 나면 누가 어떤 마음으로 문장을 적었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글은 타인의 삶을 받아들이기에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더라도,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삶과 생각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의정 갈등을 둘러싼 몇만 페이지의 통계와 자료, 보고서에 눈 깜빡하지 않던 사람들이 소아과 전공의의 글 한 편을 읽고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글은 삶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서로를 악마화하는 관계에서 나와 같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임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글은 사람들의 보편성을 상기함으로써 혐오를 막을 수 있었다.
<글을 일상에 두기>
글을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일단 가리지 않고 읽었다. 스쳐 지나가는 표지가 매력적이면 집고, 책 추천을 맛깔나게 해주면 적어놨다가 빌리고, 누군가 중요한 맥락에 인용하면 찾아봤다. 의사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을 접하려 노력했다.
특히 평생 볼 일조차 없을 거 같던 인류학, 페미니즘 문학, 보건 의학 등의 카테고리에 속한 책들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편견 없이 읽고, 더 볼 일 없을 것만 같던 카테고리에 주저 없이 손을 뻗을 수 있었다.
쓰기 또한 시작했다. 1년간 본교 교지에 글을 쓰며 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법을, 생각을 정제하는 법을 배웠다. 올해 하반기에는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글을 썼다. 무언가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했다.
이미 쓰인 기사와 글들을 찾아보고,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 글에 골몰할수록 미처 알지 못했던 삶들을 마주하며 다름을 인지했다.의대 기숙사 앞의 청소노동자 시위에 얼굴부터 찌푸렸던 나는, 잠시 멈춰 그들의 현수막을 읽고 구호를 듣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받아들이는 처지에서 내뱉는 처지가 되는 것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지만, 우린 쓰는 것 또한 익숙해져야 한다. 한아름의 생각을 떠올린다면 그 중 맥락을 가지는 건 한 움큼이고, 그중에서도 글로 담을 수 있는 건 좁쌀만큼 적다. 치열한 고민 속에서 문장을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우린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당당하게 혐오하는 사회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혀를 끌끌 차는 정도론 기분만 울적해질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글을 가까이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읽고 씀으로써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부정적인 감정을 하나둘 끊어내는 것이다. 글은 혐오를 이기는 가장 간단하고도 강력한 무기이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