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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속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시작

성균관의대 2학년 정소예
발행날짜: 2024-12-02 05:00:00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정소예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학교를 다니지 않는 지금, 오히려 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 '멈춤'이 커다란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가왔지만, 그 시간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소중한 준비 기간이 되었다. 때로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처음 학교에 줄기세포 연구실 문을 두드렸던 순간이 떠오른다. 연구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이곳에서의 시간은 기초의학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내게 잊지 못할 특별한 깨달음을 주었다. 강의실에서 스쳐 지나갔던 H/E 슬라이드와 Western blot 결과들이,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단순한 '데이터'로만 보였던 것들이, 실은 연구자들의 수개월에 걸친 땀과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깨달았다. 피펫 하나를 다루는 것부터 시작해, 세포를 배양하고, 동물실험을 참관하고,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매 순간이 설레는 도전이자 새로운 배움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교과서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실험실에서 배운 것은 단순한 실험 기술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실험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나는 '인내'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 피펫팅 하나, 세포 배양 하나에도 정교한 준비와 집중력이 필요했고, 매번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 앞에서 좌절을 이겨내는 법을 알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실험은 때로는 마치 마라톤과도 같았다.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어도, 다음 날 다시 같은 자리에 서는 것. 처음에는 단순한 반복처럼 보였던 이 과정이, 사실은 연구자로서의 근성을 키워가는 시간이었다.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평범해 보이는 진리가, 실험실이라는 작은 우주에서는 가장 중요한 생존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집요한 도전 끝에 얻어낸 작은 성공의 기쁨은, 그 어떤 순간보다 더 값진 것이었다.

연구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던 도중 우연히도 AI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의료 분야에 AI를 접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가능성에 점점 매료되어갔다. 매주 새로운 분야에서 AI가 혁신을 일으키는 사례들을 배우면서, 미래 의료가 더욱 선명하게 그려졌다.

영상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개인에게 맞춤화된 치료를 제공하며,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일.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낯설기만 하던 코딩도, 조금씩 부딪히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갔다. 작은 코드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은, 실험실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었을 때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마주한 분야가 이제는 내 미래를 그리는 새로운 나침반이 되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길이 우리를 더 흥미진진한 곳으로 이끌어주고는 한다.

새로운 배움과 발견은 언제나 즐겁지만,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야 말로 가장 즐거운 경험이다. 휴학을 하고나서 동기들과 만나기 어려워지고 고립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조금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려와는 달리 많은 선배님들, 그리고 다른 의대생들과 이토록 다양한 교류를 나누었던 적은 올해가 처음이다.

'투비닥터'로 활동하면서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로 다양한 선배 의사분들을 뵐 수 있었고,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선배님들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투비닥터 팀원들과 함께 여러 진로 관련 세미나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접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내 관점이 담긴 기사가 매거진에 실리는 경험은 무척 뜻깊었다. 이를 통해 세상과 마주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나의 목소리를 확립해 나갈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모든 순간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각각의 경험들이 하나둘씩 연결되어 더 큰 그림을 만들어가고 있다. 실험실에서의 발견, AI를 공부하며 느끼는 설렘, 다양한 의료계 구성원들과의 만남까지. 이 모든 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때로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다름'의 길에서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지금의 도전과 불확실성도, 언젠가는 빛나는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새로운 의료의 지평을 꿈꾸며,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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