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어터몰렌(William Utermohlen, 1933–2007)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후, 병의 진행 과정을 자신의 예술을 통해 기록하며 독특한 예술적 여정을 남긴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1995년 63세의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을 진단을 받고, 2007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질병이 그의 삶과 예술에 미친 영향을 그려 나갔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예술적 가치를 넘어 의학적, 심리학적 중요성을 지닌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자화상 시리즈는 알츠하이머병이 인간의 뇌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강렬한 예술적 증언이다. 이 시리즈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겪는 감정과 인지적 변화를 생생히 전달하며, 예술적·학문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자리 잡았다.
그는 193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1951년부터 1957년까지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960년대 초반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1962년 런던에 정착하며 예술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67년 첫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주로 초상화를 작업하며, 인물의 감정과 이야기를 강렬한 색채와 사실적 표현으로 담아냈다. 1980년대에는 유대교 회당과 병원에서 벽화를 그리며 예술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그러나 1995년 63세에 알츠하이머병 진단 이후, 그의 작품은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대조로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했지만, 병이 진행됨에 따라 그의 그림은 점점 더 흐릿하고 단순한 형태로 변화했다.
색채는 옅어지고 선은 불명확해졌으며, 작품의 구성과 비례감각도 점차 무너졌다. 그의 예술적 표현은 사실적인 묘사에서 점차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그린 자화상들은 치매가 어떻게 그의 자아를 잠식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예술적 기술에 변화가 나타나기 전, 그와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던 60세 시기의 초상화는 이후 작업을 비교할 수 있는 스타일적, 기술적 기준점을 제공한다(그림 A). 62세에 그려진 두 번째 초상화는 구조와 얼굴의 다른 부분과의 공간적 관계 측면에서 개별 얼굴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한 초기 징후를 보여준다(그림 B).
이러한 변화는 63세에 그려진 세 번째 초상화에서 더 두드러지며, 비례 감각이 변하고 특히 귀에서 두드러진다(그림 C). 그의 구성 능력의 저하는 64세에 그려진 네 번째 초상화에서 더욱 명확해진다(그림 D). 이 그림에서 얼굴 특징은 흐릿하게 합쳐지거나 이상하게 분리되어 나타난다. 이 변화는 예술적 기법이라기보다는 그의 그림 능력의 저하로 설명할 수 있다.
이후 유화 작업을 포기하고 연필로만 작업한 그림이다(그림 E). 얼굴의 기본적인 요소만 인식할 수 있으며, 턱선이 이어지면서 얼굴을 나눈 결과로 초상화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1937)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분열된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65세에 그려진 초상화는 더 추상적이며, 이전 작업에서의 사실적 표현이 더 이상 달성되지 않음을 반영한다(그림 F). 원근과 깊이가 사라졌지만, 형태와 색채는 여전히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사용됐다.
그는 예술적 재능의 저하와 그로 인한 자신감 부족으로 여러 차례 그림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설명한 다섯 개의 초상화는 모두 스스로 동기를 가지고 제작되었으며, 이전 작품을 복사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자화상 시도이다. 자화상의 여러 가지 기능 중 하나는 느낌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많은 미술평론가들은 위의 자화상이 공포, 슬픔, 분노, 노골적인 고통, 체념 등의 다양한 심리 상태를 솔직하게 표현한다고 평가했다
어터몰렌의 자화상 시리즈는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그려낸 가장 중요한 예술적 기록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예술적인 가치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이 경험하는 감정적, 인지적 변화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질병의 증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치매가 어떻게 사람의 정신을 잠식하고, 그것이 감각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했다. 그의 작품은 의학 및 심리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알츠하이머병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자화상에서 두개골의 형태나 단순한 회색 얼굴을 그려내며, 부서짐과 망각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감정적으로 섬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자화상은 치매 환자가 경험하는 내면의 변화를 예술적으로 압축한 것으로, 의학적, 심리학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남았다.
윌리엄 어터몰렌의 예술적 여정은 단순히 치매라는 질병에 맞서는 싸움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병을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키며, 치매라는 병에 걸려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끝까지 자신을 표현하려 했으며, 이는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치매라는 고통 속에서도 예술가로서의 존재를 지키려는 의지와, 감각의 상실 속에서도 계속해서 세상과 소통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강하게 드러냈다.
어터몰렌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치매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큰 위로와 영감을 주고 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치매라는 병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줬으며, 이로써 그는 예술을 통한 치매 연구의 중요한 선구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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