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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 환자와 장기기증의 가능성(23화)

은평성모병원 오재훈 교수
발행날짜: 2024-12-30 05:00:00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오재훈 교수

[메디칼타임즈 &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 공동기획]

장기 기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나, 여전히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선 현장의 의료진들이 경험한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장기 기증 인식률을 높이고, 이를 촉진하는 공동기획 시리즈 ‘오늘, 장기이식병원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3회] 심정지 환자와 장기기증의 가능성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오재훈 교수

저는 병원 밖에서 심정지로 쓰러졌다가 가까스로 소생된 환자들의 치료를 맡고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입니다. 심정지란 우리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심장의 박동이 멈추며, 그로 인해 모든 장기로의 혈류와 산소 공급이 차단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장이 멈추는 그 순간부터 소생술이 성공하기까지, 환자의 몸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심장이 가까스로 다시 뛰기 시작해도, 많은 환자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으며, 심정지가 남긴 흔적은 몸 곳곳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중 뇌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기관 중 하나입니다.

뇌세포는 특히 허혈 상태에 매우 취약하여, 뇌관류의 중단은 즉각적으로 세포 독성 부종을 유발하고, 이는 세포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자발적인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축적된 세포 독성 물질과 활성 산소는 세포의 2차 손상을 유발합니다. 현재로서는 심정지 후 발생한 뇌손상을 직접적으로 치료할 방법은 없으며, 생리학적 항상성을 유지함으로써 뇌의 추가 손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입니다.

그중 하나가 목표체온치료입니다. 과거에는 저체온치료로 불리던 이 방법은 환자의 생리학적 항상성을 유지하고 뇌세포의 추가 손상을 막기 위해 시행되는 치료입니다. 2003년 한 임상연구에서는 병원 밖 심정지 환자 중 저체온치료를 받은 환자의 생존율과 신경학적 결과가 개선되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대 대한저체온치료학회장을 역임한 박규남 교수님께서 1997년 국내 최초로 심정지 환자에게 저체온치료를 적용해 생명을 구한 이래, 지난 20여 년간 많은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심정지 후 혼수상태 환자에게 목표체온치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생존만큼 중요한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신경학적 예후입니다. 신경학적 예후는 보통 Cerebral Performance Category (CPC)로 평가하며, CPC 1-2 단계를 좋은 신경학적 예후, CPC 3-5 단계를 나쁜 신경학적 예후로 분류합니다. 이 중 CPC 5 단계는 뇌사 또는 사망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의학적 죽음을 뜻합니다.

2015년 AHA 가이드라인에서는 병원 밖 심정지 환자의 뇌사 진행이 의심될 경우(CPC 5 단계), 장기 공여를 위한 검사를 진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저체온치료 네트워크에서 진행한 다기관 전향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병원 밖 심정지 후 소생 환자의 5.8%가 장기를 공여해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심정지 후 잠재적 뇌사 환자를 주요한 장기기증 그룹으로 보고, 이에 대한 연구와 법적 기준, 시스템을 철저히 마련해 오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의 단일 연구 기관에서 심정지 후 뇌사 환자의 기증 비율은 41%에 달하며, 미국에서도 약 50%의 기증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입니다. 심정지 후 뇌사 환자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관심을 통해 장기기증의 기회가 더욱 확대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증을 기다리는 수많은 수혜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생명의 기회를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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