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선별집중심사 항목에 검사 다종이 포함되면서 개원가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가 실손보험 개편과 결부되면서 비급여와 급여 진료 모두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모습이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말 검사 다종에 대한 선별집중심사를 예고했다. 외래 검사 청구 금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일부 요양기관에서 의학적 필요성이 불분명한 검사까지 일률적으로 실시하는 경향이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병·의원 외래에서 실시하는 평균 검사 개수가 10개 미만임을 고려해 15종 이상 검사를 대상 항목으로 선정했다는 것. 또 심평원은 관련 설명자료를 통해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및 시민단체를 포함한 '심사제도운영위원회' 논의를 통해 항목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항목 결정은 심평원 역할 "외부와의 논의 안해"
하지만 메디칼타임즈 취재 결과 검사 다종 항목이 위원회 발전계획안에 포함된 것은 맞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별집중심사는 매년 심사 경향을 보고 선제적으로 항목을 공개하는 방식의 제도로, 어떤 항목을 선정할지의 여부 자체는 외부단체와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즉 선별집중심사 항목은 심평원이 결정하며, 이후 외부단체와 세부 사항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방식인 셈이다. 실제 이를 담당했던 대한의사협회 이전 집행부 임원 역시, 검사 다종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의료계에선 심평원 결정에 대한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사 다종을 선별집중심사 항목에 포함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근 몇 년간 10억 원 규모로 청구되던 술기가 지난해 100억 원 규모로 폭증한다면 이에 대한 선별집중심사 필요성을 인정하겠지만, 검사 다종은 경우가 다르다는 것. 검사는 과별로 종류와 사용량이 모두 다르고 특정 검사가 증가한 것인지, 아니면 전체 검사가 늘어난 것인지 경우의 수가 많다는 지적이다.
선별집중심사에 검사 다종을 포함하려면 이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부터 제시해야 함에도, 심평원은 "검사 청구 금액이 지속 증가하고, 일부 의학적 필요성이 불분명한 검사까지 일률적으로 실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사 다종 심사 근거 없어 "데이터 제시하라"
특히 대한개원의협의회는 10일 각과 의사회 회장단 회의를 진행하는 등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집행부 출범 후 보험파트를 통해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대한일반과의사회 좌훈정 회장은 "이는 굉장히 무책임한 얘기다. 이런 황당한 항목이 왜 갑자기 등장하게 됐는지 의문이다. 어떤 항목에 정밀한 심사가 필요하다면 그에 따른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이를 심평원이 마음대로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심평원은 이 같은 결정에 대한 배경과 근거, 그 과정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평원 통계나 어떤 근거가 있어야 그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다. 타당한 부분이 있다면 의료계가 수용할 부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는 완전히 폐기를 해야 한다"며 "심평원의 목적은 심사와 평가로 진료비를 줄이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 과소 평가된 부분은 올려주는 의미도 있지만 지금은 오로지 줄이는데 혈안이 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비급여 이어 급여 진료도 초토화 "누가 하겠느냐"
일선 의료 현장 반발은 더욱 크다. 더욱이 이 같은 심평원 움직임이 비급여 진료를 규제하는 실손보험 개편과 결부되면서, 정부가 급여·비급여 진료할 것 없이 모든 의료비를 줄이려고 한다는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내과 원장은 "심전도나 영상을 빼도 지역사회획득 폐렴 환자 검사가 17종이 넘고,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 검사만 해도 16종이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15종 이상 검사를 집중심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되면 의사의 진료권은 엄청나게 위축되고 환자 역시 본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확실하게 저해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실손보험 개편으로 비급여를 규제하는 상황에서 급여도 제한을 걸기 시작하는 꼴이다. 급여에서 적정선을 보장하면서 비급여를 건드려야지, 급여 자체도 건드리는 상황에서 누가 이를 하려고 하겠느냐"며 "정부는 모든 의사가 환자를 일률적으로 검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는 실상을 잘 모르는 소리"라고 강조했다.
대한내과의사회는 국민건강보험법 및 관련 고시에 15종 이상의 검사를 제한하거나 이를 심사 대상으로 삼는 규정이 없다고 강조했다. 심평원 결정은 이런 법적 원칙을 위반한 월권행위며, 명확한 기준에 근거해야 하는 급여 제한이나 삭감을 임의로 결정하는 행위라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 내과의사회 이정용 회장은 "만약 삭감이 발생한다고 하면 이에 대한 고시 내용을 토대로 정확하게 심사가 이루어졌는지 다툴 것이다"며 "이에 대해 심평원의 귀책이 있고 잘못된 발표가 이뤄진 것이라면 차후 그 내용을 수정하거나 검사 다종을 항목에서 제외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대통령이 탄핵된 상태라면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의료 정책이나 고시를 자제해야 함에도, 이렇게 의료계와 계속 충돌을 일으키는 이런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개원가에서도 실질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의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요구를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심평원은 이 같은 의료계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검사 다종이 선별집중심사 항목에 포함됐다고 해서 필수적인 검사까지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이달 중 의협과 만나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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