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어떨까? 만들어낸 문장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아마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환자'와 '치료' 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방식은 천차만별일지라도 궁극적으로 의사가 하는 일을 요약하자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되기 위한 교육에서도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환자의 질병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이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최근 접한 책들을 통해 나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시기가 있다. 비슷한 질문을 가진 책들이 연이어 찾아오는 시기 말이다. 일부러 그러려던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도 읽고 있는, 혹은 읽을 예정인 책들을 들추어보면 유사한 주제에 대한 책이 몇 권씩 쌓여 있던 적이 꽤 많았다.
그럴 때면 내가 책을 찾은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찾아 준 것만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러나 꼭 답해야만 하는 질문들이 책들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번 겨울에 찾아온 질문은 '아픔'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아픔을 겪어낸 삶, 그리고 겪어내고 있는 삶 속에서 드러나는, 질병 경험이 전반적인 삶의 궤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되었다.
이전에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를 읽었을 때부터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지만, 쉽게 결론을 지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기에 오랫동안 유예해 왔던 질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아픈 몸을 살다』의 번역가이신 메이 작가님의 투병 경험과 성찰을 담은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를 읽고 다시금 이 주제에 대해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픈 몸을 살다』의 도입부에서는 책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병(condition)이 삶에서 특정한 조건/상황/한계(condition)가 되었을 때 그 안에서 살아가며 배우고 생각한 것을 적은 책이다. '아프다는 것을 읽고 쓰기'에 관한 책이다. 말과 고통에 대한 책이다. 고통의 교육에 관한 책이다. 우리를 지상으로 잡아끄는 중력에 대한 책이다. 괴물이고 고통이고 기적인 몸을 산다는 것에 관한 책이다" (메이(2024), 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복복서가)
그동안의 의학 교육에서는 대부분 질병을 정상성이 깨진 일시적인 상태로 간주하고 이를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 중점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이러한 '질병관'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눈부신 진보를 이루면서 여러 불치병/난치병들에 대한 치료법을 발견해 내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할 과제들은 많이 남아있다.
오히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예전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퇴행성 질환과 여타 만성 질환 등이 속속들이 사회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도 너무나 훌륭한 해결 방안이지만, 앞으로의 의학 교육에서는 '질병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이해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몸의 고통은 이해받기 어려운 경험이다. 특히 만성 질환이라면, 장기간 고통 속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고통은 날씨처럼 외부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객관적인 상황으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매우 주관적이고 내밀한 경험이다. 연이은 고통에 대해 홀로 정확히 측정할 수 없으니 외부에 이에 대해 전달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뛰어난 작가들조차 고통에 대해 쓰는 일을 꺼렸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외부로 전달될 수 없으니 당연히 이해받기 어렵다. 심하게 말하면 근본적인 이해는 현재로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게 고통받는 환자는 '자신의 몸속에 갇히게' 된다. 질병 경험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아픔'은 비가역적인 경험이다.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종류의 아픔이든 아픔을 겪기 전의 자아와 그 이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나온 고통 혹은 지금 겪고 있는 고통들은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이며 일종의 '고통 자료실'을 만든다. 이는 과거를 회상할 때도 쓰이지만,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도 열린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라는 한계(condition) 속에 갇혀 있고, 평생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고통을 미리 겪어 본 사람에게는 계속 시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끈기가 깃든다.
다른 사람을 고통 저편에 홀로 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 인류애, 동지애, 측은지심, 연민 등 다양한 단어로 수식될 수 있으나 결코 어떤 단어로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마음이 샘솟는다. 이렇게 고통의 경험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가도, 타인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많이 아파본 만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고통을 겪어내는 이들을 매일 마주하는 의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같은 아픔을 겪어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운명에 달린 일이다. 또한 같은 질병을 겪더라도 그 과정에서 느끼는 바는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평생 답을 구해야 할, 그럼에도 뾰족한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은 질문이지만, 최소한 끝없이 시도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통이라는 벽 너머에 환자를 홀로 두지 않도록. 그리고 언젠가 그 벽이 기울어 땅에 가닿으면 당신의 세상을 넓혀줄 다리가 될 것이라고 외쳐야만 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결코 가닿을 수 없더라도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누군가의 고통을 대하는 사람이 되는 일의 무게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고 고민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마음을 다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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