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하지 않는 제3자가 대화를 하는 타인간의 발언을 녹음하거나 청취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대화 당사자의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화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위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한 행위가 음성권이라는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민법상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최근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5. 10. 16. 선고2025다204730 판결)은 헌법상 기본권인 인격권에서 도출되는 음성권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단순한 녹음행위가 인격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였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A회사에서 근무하던 직원 B씨는 회사의 임직원들이 자신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다며 이를 음성권의 침해로 보고 회사와 임직원들을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B씨는 자신의 음성이 본인의 동의 없이 녹음·재생된 것은 헌법상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원심에서는 '이 사건 녹음행위는 원고가 수인하여야 하는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 재생, 녹취, 복제, 방송, 배포 등이 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그의 음성을 녹음하거나, 녹음한 음성을 방송, 배포하는 등의 행위는 원칙적으로 음성권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하여 불법행위가 될 수 있음을 전제하였다.
다만, '민사소송에서 대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였더라도 그 녹음한 파일이나 녹취록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다37138, 37145 판결 등 참조), 실체적 진실 보존 또는 자기 방어를 위하여 상대방 대화의 녹음이 필요한 경우가 있음을 고려하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러한 녹음행위가 음성권을 위법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방의 명시적인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기망 또는 협박하여 녹음을 하는 등 침해방법이 부당한 경우, 또는 녹음행위 자체는 부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녹음한 음성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방송, 배포하는 등의 경우에는, 이로 인하여 달성하려는 이익의 내용과 필요성, 상대방이 입게 되는 피해의 성질과 정도 등에 비추어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다.
대법원은 음성권이 헌법 제10조에서 도출되는 인격권의 일종임을 인정하면서도 녹음행위가 항상 불법행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즉, 녹음의 목적이 자기 방어 또는 실체적 진실의 확보에 있다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허용될 수 있으며, 녹음의 방법과 범위가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준이라면 곧바로 인격권침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증거를 수집하거나 기타 목적으로 녹음을 하는 행위는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법원 판결은 사생활 보호와 정보 수집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을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언제든 녹음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타인의 음성을 기록하는 행위가 단순한 기술적 편의가 아닌 법적·윤리적 책임을 수반하는 행위임을 인시식하여야 할 것이다. 녹음이 남용될 경우 오히려 신뢰를 해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음성권을 인정하면서도 그 보호 범위에 유연성을 부연하였다. 이는 인격권 보호와 사회적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 판결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에서 이 판결이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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