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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발행날짜: 2026-07-13 05:00:00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목에 난 걸 양잿물로 씻고 싶어요"

종양내과 실습 첫 주에 배정받은 70대 할아버지 환자였다. 성대로 암이 침범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매번 옥스포드 메모지를 10장 가까이 써 가며 필담을 나누었다. 가뜩이나 문진과 라포쌓기에 자신이 없는 터라 급상승한 문진 난이도에 긴장했지만, 나를 레지던트 선생님으로 생각하시는 눈치의 보호자분도 워낙 협조적이셨고 며칠 얼굴을 보니 이젠 할아버지와 꽤 친해졌다고 생각한 어느 날이었다.

전반적으로 괜찮으신 것을 확인하고 병실을 나서려던 찰나, 할아버지가 주저하다 뭔가를 슥슥 적더니 내게 건네셨다. 젊을 적 건설 현장에서는 다치면 양잿물을 바르곤 했는데, 목에 난 혹 – 전이된 림프절 – 도 그렇게 소독하면 안 되냐는, 내 의학적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내용이었다.

머리가 뎅…했다. 이미 지난 6개월간 두 차례의 항암치료와 서른 번이 넘는 방사선 치료를 받은 분이었다. 이와중에 이걸 교수님께는 못 여쭤보고 나에게 물어보셨다는 점에서, 그래도 나름 라포는 잘 쌓은 건가…싶으면서도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닌데! 했다.

나는 양잿물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피부에는 더더욱 안 되며 목이라는 부위 자체가 임상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참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듣고 계시다 메모지에 한 마디를 적어 내게 보여주셨다.

"알겠습니다"

그날 병원을 나오면서 계속 그 메모가 생각났다. 정말 이해하셨을까? 그냥 학생 하나가 뭐라뭐라 열심히 이야기하니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해주신 게 아닐까. 겨우 며칠 남짓 얼굴 본 주제에, 괜히 그간 내가 할아버지와 했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허망함이 몰려들었다.

나는 그동안 할아버지가 병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계실 거라고, 치료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는 알고 계실 거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6개월간 수도 없이 들으셨을 설명들이, 내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 전달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뒤, 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또 다른 할아버지 환자는 난청이 심해 회진 때도 제대로 된 전달이 어려운 분이었다. 콧줄 삽입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는데, 이유를 여쭤보면 "이전에도 자꾸 내 코로 똥을 빼내려 했어! 너무너무 싫어"라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교수님께 섬망이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병실로 향했다. 항상 손나팔을 만들어 그래도 소리가 들리는 오른쪽 귀에 대고 반쯤 소리지르듯 질문하곤 했는데, 그날은 목이 좀 아파 가져간 차트 이면지에 글을 써가며 이어가려 했다.

그러기를 수 분째, 할아버지는 망설이시다가 나를 가까이 부르시더니 내 귀에 대고 작게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한글을 읽을 줄 몰라"

머리가 또 한 번 뎅…했다. 어떻게 한글을 모르는 분이 계시지, 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러운 충격이 먼저였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충격이 왔다. 그럼 코로 똥을 빼낸다는 말이 섬망이 아니라면, 이건 대체 어떤 오해에서 비롯된 공포였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설명이 닿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나는 애초에 닿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딴에는 쉽게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세포가 여기저기…" 말을 하다가 문득 입을 멈췄다. 이분은 '세포'를 아실까? 의대에 들어오기 전부터도 세포는 내게 너무 쉬운 단어였다. 오래, 또 자주 써왔기에 남에게도 충분히 쉬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세상에서의 이야기였다.

그날 저녁, 환자분께 하고픈 말씀을 다 해보시라고 했다. 이해하기 쉬운 말들은 아니었지만, 간병인 분의 도움을 받아 차츰차츰 말 속에서 단서를 찾아가며 환자분의 병에 대한 인식 상태를 이해해나갔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드렸다. 대강 한 시간쯤, 내가 역대 한 문진 중 최장 시간을 가볍게 갱신한 순간이었다.

최근 명동을 지나칠 일이 있었다.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외국인 관광객들이 거리 한복판에서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어지러운 간판과 네온사인이 뭐가 저렇게 좋을까 싶다가도, 일본 여행을 가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일본어 간판 앞에서 왠지 모를 감성에 취해 찍은 사진이 수두룩한 내 갤러리를 떠올리곤 금세 납득하게 된다.

나는 그 간판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읽지 못한 채 분위기를 즐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실에서는 그 단순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누군가는 나의 언어 역시 그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내가 꽤나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내 기준에서는) 환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을, 의학적 정확성을 조금 포기하면서까지 쉬운 표현을 고르고, 열심히 정제하고 가공해 가장 쉬운 형태로 제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쉬운 말'이라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오로지 나만이 공유하는 것이었다.

실습을 시작한 지 수 개월이 지났지만, 문진은 항상 어렵다. 아직 이럴 때 써먹을 넉살이 부족한 탓인지 라포를 쌓는 일도 어렵고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질문을 적재적소에 던지는 일도 어렵다. 이번 과를 돌고 나서는 고민 하나가 더 늘었다.

매일 SOAP note의 Education plan 칸을 채우며, 나는 늘 환자에게 '무엇을 더 설명해야 하는가' 만을 고민해왔다. 하지만 이번 실습에서 처음 알았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설명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환자가 이미 다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전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다음 환자를 만나면,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환자분, 지금까지 들으신 내용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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