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정부가 공공기관 기능개혁의 일환으로 한국한의약진흥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통폐합 검토에 나선 가운데, 고호연 한국한의약진흥원 원장이 그동안 수행해 온 공공적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과거 한의약은 오랜 임상 경험과 전통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지만, 오늘날 세계 의료계가 요구하는 것은 '근거'라는 점에서 실제 임상 데이터를 축적하고, 표준화된 진료지침을 만들며,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에 역할을 해 왔다는 것.
실제로 수익성이 낮아 민간 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서도 공공인프라 구축을 통해 제형 개발 및 기술 이전, 보험 처방 기반 마련까지 이력을 쌓은 만큼 공공성을 갖춘 전담기관 역할에 충실했다는 게 그의 판단. 고호연 한국한의약진흥원 원장을 만나 진흥원의 '흔들리는 존재론'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한의약도 첨단 영역"…CPG·RWD 구축이 경쟁력
국내 한의약이 변화에 대응해 '근거 중심 의학'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에는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있었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CPG) 개발부터 실제 임상데이터(Real World Data, RWD) 구축,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국제 표준화 연구까지 한의약의 과학화와 산업화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아온 것이다.

최근 정부의 한국한의약진흥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간 기능 조정 검토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의약 분야 전담 공공기관이 수행해 온 역할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호연 한국한의약진흥원장은 "한의학은 단순히 경험이나 전통만을 이야기하는 의학이 아니라 경험주의적 과학을 기반으로 발전해 온 의학"이라며 "이제는 국제사회와 같은 언어로 소통하기 위해 객관적인 근거를 축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 원장이 가장 강조한 변화는 '근거'였다. 한의약이 의료체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임상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객관적인 근거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그는 "그동안 한의학은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는 데 머물렀다면 이제는 국제사회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그래서 진흥원이 RWD, 실제 임상 근거(RWE)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질환별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CPG) 개발이다.
고 원장은 "진흥원이 개발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은 단순한 연구보고서가 아니라 실제 의료현장에서 활용하도록 권고되는 표준"이라며 "근거를 축적하고 의료현장에서 활용하면서 다시 데이터를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한의약진흥원은 2016년 이후 60여 종의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을 지원했으며, 국가한의임상정보포털 운영과 표준 EMR 보급 등을 통해 임상 근거 축적 기반도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진흥원은 2021년 WHO 전통·보완통합의학 협력센터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해 WHO의 '전통의학 글로벌 전략 2025~2034' 수립 과정에도 참여했다. 올해는 WHO가 추진하는 '전통의학 임상진료지침 개발 매뉴얼' 연구를 수행하며 전통의학 국제 표준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고 원장은 "세계에는 다양한 전통의학이 있지만 근거 기반 임상진료지침 개발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WHO가 연구를 맡긴 것도 그동안 축적한 근거 구축 역량을 인정한 결과"라고 말했다.
■ "민간이 하기 어려운 영역엔 공공의 역할 있어야"
한의약 산업화 역시 진흥원이 강조하는 또 다른 축이다. 고 원장은 산업 육성을 단순한 기업 지원이 아니라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반을 국가가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량 소비되는 한약재는 시장성이 크지 않아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하기 어렵지만 의료현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품목"이라며 "이런 공급체계를 유지하고 표준탕약을 개발하는 것이 공공기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한약제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위한 연구나 안전성 검증이 쉽지 않은데 진흥원이 공공 연구 인프라를 활용해 이를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진흥원은 한약비임상시험센터(GLP), 한약제제생산센터(GMP)를 운영하며 한약제제 개발과 제품화를 지원하고 있다. 짜먹는 연조엑스 한약 개발과 기술 이전, 보험 처방 기반 마련도 이러한 공공 인프라를 바탕으로 이뤄진 사례다.
고 원장은 "표준화와 제형 개발, 기술 이전, 제품화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며 "기업 혼자서는 어려운 부분을 공공이 지원하면서 산업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흥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공공 업무도 적지 않다는 것.
고 원장은 "한약제제 안전성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와 함께 조제한약 모니터링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며 "문제가 발견되면 의료기관에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컨설팅까지 제공하면서 국민이 보다 안전하게 한약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한약재 품질관리, 한약 안전성 연구 역시 진흥원이 수행하는 대표적인 공공사업이다.
그는 "공공기관은 민간 시장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하기 어려운 영역을 책임지는 곳"이라며 "그동안 진흥원이 수행해 온 사업 대부분이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한의약 분야 유일 전문기관" 존재론적 위기에 선 그어
정부는 현재 공공기관 기능개혁의 일환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들의 기능 조정을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한의약진흥원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간 기능 통합 여부도 논의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 기능개혁은 업무 효율화와 중복 기능 해소라는 큰 취지에서 추진되는 것이지만 기계적인 기관 통합이 곧 시너지 창출로 이어지는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달린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한의약육성법에 따라 설립된 한의약 분야 유일의 법정 전문기관으로, 한의약 정책 지원과 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한약재 수급관리, 한약 안전·품질관리, 공공 연구 인프라 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해 왔다.
즉 한의약 분야 유일한 법정 전문기관으로 단순 산업 진흥 기관과는 설립 목적과 기능 범위가 상이할 뿐더러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중복되는 역할도 없어 통폐합은 물리적인 구조 조정에 가깝다는 뜻이다.
고 원장은 "한의약 분야는 정책과 연구개발, 산업 육성, 공공 인프라 운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문 영역"이라며 "제5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이 본격 추진되는 시점에서 그간 축적해 온 근거 구축 역량과 공공 인프라를 바탕으로 존재론적 위기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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