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일체형 주사제 키트가 수작업 조제의 취약성을 극복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획일적인 국내 약가 정책이 제도적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위한 정부 약가 인하 정책 기조는 존중하지만, 경직된 제형 분류와 우대 요건이 구조적 모순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감염 예방에 특화된 일체형 주사제 키트 등 특정 영역에서 유효성이 입증된 제형은 장기적 편익을 고려한 특례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현행 약가 인하 제도에 대한 제약산업계 우려와 필수 약제 공급 안정을 위한 정책 대안을 살펴봤다.
■제도적 한계 부딪힌 주사제 키트…획일적 제형 분류 발목
의료계와 제약산업계가 지적하는 현행 약가 제도의 맹점은 일체형 주사제 키트의 특수성을 구분할 명문 제형 코드가 없다는 점이다. 허가 체계상 일체형 키트는 조제 방식과 용기 구조가 완전히 다름에도 일반 바이알과 동일한 '주사제(IJ)'로 묶여 있다.
이로 인해 기등재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 과정에서 일체형 키트가 일반 바이알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될 처지에 놓였다. 일체형 키트는 동일 제형 내 경쟁 제품이 없는 단독 제품임에도, 일괄적인 분류 탓에 약가 인하의 표적이 된 셈이다.
더욱이 일체형 키트 상한금액이 동일 제제 최고 상한금액 산정 기준으로 잘못 반영될 경우, 일반 바이알의 인하 폭은 축소되고 일체형 키트만 삭감되는 역차별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일체형 키트의 차별성을 여러 차례 인정해 왔다. 실제 2011년 기등재 의약품 목록 정비 당시 조제 오류 예방 및 무균 상태 유지 가치를 인정해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대상에서 일체형 키트를 제외했다.
이후 2019년 항생제 키트 주사제 허가사항 통일 조정, 2021년 품목 갱신 시 투여 경로 상이 판단, 2024년 주성분 함량 코드 분리 등 일관되게 독립적인 관리 체계를 유지해 왔다.
사법부 역시 약가 인하 처분 취소 소송 확정판결을 통해 일체형 키트가 부대비용 절감과 감염 위험 경감이라는 경제적·기능적 차별성을 지닌 별도의 제형임을 명확히 판시했다.
그럼에도 제형 분류 코드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다시 동일 제형으로 취급해 약가 인하를 강행하는 것은 그간의 행정 기조와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필수 항생제 우대 정책에서 소외…실질적 제조 기여도 외면
필수 항생제의 안정적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약가 우대 정책에서도 일체형 키트의 제형적 특수성이 외면될 위기다.
관련 정책에서 정부가 정한 우대 조건은 투약 방식, 약효, 형태가 같은 약을 만드는 회사가 3곳 이하일 정도로 공급 부족 위험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 또 포장 이전 단계의 모든 생산 공정을 자사에서 직접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 바이알 주사와 일체형 키트 주사제를 같은 제형으로 묶어 취급하면서 수많은 제약사가 동일 제형 제조사로 합산된다. 이 경우 일체형 키트 주사제 제조사는 당연히 우대 대상에서 탈락하게 된다.
일체형 키트의 독특한 제조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키트 제조사는 항생제 바이알을 반제품 형태로 공급받더라도, 자사 제조 시설에서 생리식염수 충전, 연통침 결합, 무균 융복합 등을 직접 진행한다.
반제품 공급업체는 완제품을 공급하지 않으며, 의료기관에 납품되는 최종 완제품의 출하와 품질 관리는 모두 키트 제조사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완제품 제조업체와 동일한 수준의 제조 인프라와 비용을 투입함에도 반제품을 들여온다는 이유로 '전 공정 수행' 요건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여러 행정 조치로 일체형 키트의 독자성을 인정해 온 만큼 제형 코드가 없다는 이유로 약가 인하를 강행하는 것은 신뢰 보호 원칙에 위배된다"며 "재평가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려 단독 제품인 일체형 키트는 실질적 제형 분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로벌은 총치료비용 주목 "장기적 편익 위한 특례 필요"
현재 일체형 주사제 키트는 국내 필수 항생제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세프메타졸 성분의 메타 키트는 해당 성분 시장의 약 60%, 세포페라존·설박탐 성분의 페라설주는 약 40%를 감당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가 인하로 일체형 키트 주사제의 채산성이 악화해 기업이 생산을 중단하면 공급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2차 감염 및 조제 과오 방지 효과를 고려하면, 약가 인하가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소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해외에선 제형별 특수성을 합리적으로 반영할 가산 및 예외 제도를 신설해 장기적 편익을 도모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은 일체형 주사제 키트의 가치를 총치료비용 관점에서 평가해 조달에 반영한다. 영국과 프랑스 등은 보건의료기술평가(HTA)를 통해 조제 소요 시간 단축, 소모품 감소, 투약 오류 예방 효과 등을 경제성 판단 지표로 삼고 있다.
또한 병원 조달 과정에서도 무균 조제 단순화와 의료진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는 최고가치낙찰제(MEAT)를 활용, 특수 제형의 혜택을 실질적인 구매 경쟁력으로 인정해 주는 모습이다.
일본은 약가 특례 제도를 통해 키트 제품의 제조 원가 보전과 고부가가치 개발을 직접 장려한다. 신규 키트 제품에 원재료비를 보전해 주며 의료 현장 유용성이 입증되면 5%의 시장성 가산을 추가로 부여한다.
실제 일본 약가 산정 결과를 보면 세파졸린나트륨 1g 기준 바이알 오리지널은 346엔이지만, 키트 오리지널은 1062엔으로 책정되는 등 제형의 특수성이 직관적으로 반영돼 있다.
이에 국내서도 글로벌 흐름에 맞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최근 무균 조제 특수성을 반영, 별도 제형 코드 신설 및 최대 5%의 임상적 유용성 가산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해당 조치는 신규 등재 약제에만 국한돼 기등재 재평가로 인한 약가 삭감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더욱이 5% 이내의 가산율은 키트 약가를 최대 207%까지 높게 인정하는 일본과 비교해봤을 때, 고도의 무균 설비 투자 원가를 보전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체형 키트를 일반 제형과 실질적으로 분리해 '1개사 제품'으로 유권해석하거나 '장관이 정하는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이와 함께 관련 제형을 약가 재평가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필수 항생제 우대 요건의 '직접 생산' 기준을 개선해 실질적인 완제품 제조 기여도를 인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와 관련 산업계 한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하려는 정부의 목적은 존중한다"면서도 "다만 행정 체계상의 제형 분류 부재라는 이유로 환자 안전을 지키는 필수 제형이 사각지대에서 억울한 피해를 보게 방치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이어 "단순한 약가 억제를 넘어 조제 오류 방지와 감염 예방을 통해 보전되는 국가적 기회비용을 살펴야 한다"며 "필수 약제의 안정적 공급과 의료 생태계 보호를 위해 제형의 임상적 특수성을 반영한 건설적인 특례 제도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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