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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라는 미친 바람

이창열
발행날짜: 2004-03-07 00:45:25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망령이 의료계를 떠돌며 음울한 먹장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일부는 ‘자유’라는 기표(signifiant)의 장미빛 환영 뒤에 송곳같은 예리한 가시가 숨은 줄도 모르고 일부는 뒤를 돌아보면 돌로 굳어지는 요정의 노래 소리에 현혹되어 의료계는 피를 보고 돌로 굳어지고야 말 것이다.

대한의사협회(회장 김재정) 권용진 사회참여이사는 최근 발간된 월간 <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건강보험 개혁을 주장하는 건 근본적으로 철학적 전환을 주장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도 신자유주의로 가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권이사는 이어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이나 전부 다 대처리즘 이후에 신자유주의로 가고 있다. 한국도 IMF 사태를 돌파하기 위한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로 간 것 아닌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라며 경쟁시스템 도입을 역설했다.

위 인터뷰에서 권 이사도 밝혔듯이 현재 대한민국 의사들이 대표적인 의료정책 실패국가로 저주스러울 만큼 지목하는 영국의 의료현실은 어떠한가?

여기에 더해 복지에서도 외화 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는 철딱서니 없는 보건복지부가 ‘의료도 산업이다’는 패러다임 전환을 선전하며 신자유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건강보험 등 복지혜택 축소와 정부 개입 최소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보수니 진보니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이념적 좌표 이전에 자본과 자본의 무한경쟁 경제 논리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IMF 구제금융 당시 디제이노믹스로 불리며 모습을 드러냈고 DJ정권의 경제정책을 이념적으로 뒷받침 했다. 그 결과는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 확대와 계층간 갈등 첨예화 등으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의 지향점은 사고의 자유, 부당한 억압을 받지 않는 행위의 자유 등 자유 일반과는 무관한 이른바 경쟁력 없는 것들의 도퇴될 자유와 굶을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가 몰고 올 자본과 자본의 칼날이 진검승부하는 살풍경한 약육강식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출을 늘려 인테리어도 새롭게 하고 고가의 의료장비도 리스해 들여와야 하고 외형을 키워야 한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합종연횡으로 공동 클리닉을 세우든가 개원가는 이른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의사들에게는 적정수가를 국민들에게는 적정한 급여를 주장하는 대한의사협회가 복지혜택 축소와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로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심각한 자기 모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재벌 소유의 거대 병원 중심인 대한병원협회도 아니고 시장 귀퉁이 동네 점방 수준의 개원의가 회원의 대부분인 대한의사협회에서 ‘신자유주의로 가자’고 외치는 아이러니라니….

이러한 자기 모순이 의협이 주장하는 소위 ‘의료사회주의’에 대한 즉자적인 반발이라면 제 발목을 도끼로 내려 찍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압구정동 미용실에 고용되어 쌍거풀 수술을 하는 외과의사, 점을 빼는 피부과 전문의, 승합차를 개조하여 노인정을 돌며 물리치료하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노량진 학원가에서 생물을 강의하는 의사출신 학원강사….

경쟁력 있는 젊은 후배에게 밀려 실직하고 강호무림의 개원가로 들어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내과 과장님….

한 해 3000여명의 의사가 쏟아져 나오는 신자유주의 시대 의료계의 살풍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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