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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우롱하는 닥터 마케팅…흰가운, 차트까지

발행날짜: 2013-06-10 06:39:28

탈모관리센터 등의 상술 위험수위, "이발소 주인이 의원 차린 격"

"진료 영역을 침범하면서까지 닥터 마케팅을 하는 것은 너무 한 게 아닙니까?"

서초구에서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는 모 원장은 최근 길을 가다가 깜짝 놀랐다. 한 탈모관리센터 이름에 버젓이 '닥터'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센터 앞 현수막에는 모델이 아예 녹십자 마크가 들어간 흰색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겉만 봐서는 탈모 전문 병의원과 영락없이 똑같은 모양새를 한 셈이다.

최근들어 기업들의 닥터 마케팅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의사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주로 탈모나 피부센터 등 미용업소 간판에 '닥터'나 'Dr'를 붙여 병의원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방식이다. 요즘은 한술 더 떠 광고 모델들이 흰색 가운을 입고 차트를 보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구두병원이나 PC종합병원, 컴퓨터119 등 진료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영역에만 가능했던 닥터 마케팅이 이제는 진료 영역까지 손을 뻗히고 있는 상황.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을 중심으로 닥터 마케팅의 현장을 둘러봤다.

"피부과 다니던 분들도 오십니다"

A탈모 관리센터는 '닥터'라는 명칭을 붙여 운영하고 있다. 최근 전국 60여개의 점포를 개설할 만큼 세를 떨치고 있어 이와 유사한 업체들도 속속 생겨나는 상황.

특히 광고 문구에 클리닉이나 치료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등 아예 닥터 마케팅을 대놓고 표방하는 점은 의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찾아간 서초구의 A센터는 입구부터 병의원과 별반 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간호조무사와 비슷한 복장의 직원들이 데스크를 맡고 있었고 실장 역시 녹십자 마크를 단 흰색 가운을 입어 병의원과 유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위 사진은 닥터 마케팅을 활용한 업체의 간판 모습. 아래의 사진은 메디컬 빌딩의 간판 모습. 외관상으로 의료기관 여부를 판별하기 힘들다.
입구에는 아예 영문으로 된 'Doctor's Certification'이라는 증명서를 붙이고 있어 자칫 의료기관으로 혼동할 소지마저 주고 있다.

탈모 때문에 피부과를 다닐지 관리센터를 다닐지 모르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실장은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던 사람들도 찾는 곳이 바로 이곳 관리센터"라고 강조했다.

피부과에서는 모발 이식 등 치료를 위주로 하지만 관리를 하지 않으면 역시 탈모는 다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

실장은 "피부과에서 모발이식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정식으로 관리를 받고 싶은 사람들도 이곳을 찾는다"면서 "머리카락에 좋은 영향을 주는 제제를 쓴다는 점에서 피부과와 큰 차이가 없다"고 귀띔했다.

그는 앰플 제제를 보여주며 치료 효과가 무척 뛰어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강남에 위치한 B탈모 센터도 '닥터'를 명칭에 넣은 프렌차이즈 업체다.

B업체는 광고를 통해 "오랜 연구 끝에 얻은 토종 한방 기술로 미국 FDA 일반의약품 등록과 한국 KFDA 의약외품 인정을 받았다"고 홍보하고 있다.

찾아간 B센터 역시 A업체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업체에 들어서자 간호조무사 복장과 유사하게 입은 직원이 나와 차트를 기입해 달라고 요구했다. 탈모의 시작과 형태 등 문진 차트 형태에 기록해 달라는 것.

직원은 탈모에는 지속적인 관리가 최우선이라며 모발 이식을 했더라도 센터에 나올 것을 권유했다.

"이발소 사장이 성형외과 차린 격"

이를 바라보는 의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B업체 인근의 모 피부과 원장은 "진료 영역과 겹치는 곳에 닥터를 붙여 영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면서 "마치 흰색 가운을 입은 이발소 사장이 관리센터라는 명목으로 유사 성형외과를 차린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상호 등록을 해주는 정부 당국도 문제지만 이런 빈틈을 노린 업체들의 상술에도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면서 "관리를 받는 고객들도 이곳이 병의원인지 일반 업체인지 모를 것"이라고 전했다.

피부과의사회도 도를 넘은 '닥터 마케팅'에 칼을 뺄 전망이다.

심재홍 피부과의사회 홍보이사는 "해당 업체들은 유사 의료행위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 "특히 모 업체가 바늘을 이용해 약품 제제를 모발에 침투시키는 것은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탈모라는 것은 원래 진단이 필요한 질환으로 피부과의 영역에 해당한다"면서 "이런 진료영역에 손을 뻗히면서 업체명에 '닥터'라는 용어까지 쓴 것은 무척 황당한 일"이라고 밝혔다.

심 이사는 "관계 당국에 해당 업체들의 유사 의료행위나 의료기관으로 오인할 수 있는 마케팅 방식을 시정하도록 공문을 보내겠다"면서 "의사 이미지를 팔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마케팅 수단을 근절시키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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