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국내 의료 AI 업계가 지속적인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주가 하락을 겪으며 옥석 가리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기술적 기대감으로 상승했던 성장기에서,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효용성과 수익성을 입증해야 하는 검증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의료산업계 및 증권가에 따르면 의료 AI 주요 상장사들의 주가 조정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 루닛 주가는 전일 종가 기준 9320원으로 연초 대비 50% 이상 하락했으며, 뷰노는 7580원의 종가로 연초 대비 60%가 넘는 하락세를 보였다. 딥노이드 주가 역시 연초 3000원 대에서 전일 종가 기준 1358원으로 60%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는 지난 1분기 139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보였던 씨어스도 마찬가지다. 씨어스 주가는 연초 4만 원 선에서 지난 3월 6만300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지만, 전일 2만7350원의 종가로 장을 마무리했다.
이 같은 약세는 의료 AI 기술에 대한 높은 기대감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과 실적 검증 국면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력과 매출 성장만으로 기업가치를 평가받던 초기 의료 AI 시장이, 영업활동 현금흐름과 손익분기점 달성 여부로 판가름 되는 성숙기로 접어든 것.
특히 의료 AI 솔루션은 비급여 시장에 일부 진입했으나, 국민건강보험 수가 체계 편입 속도는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병원 입장에선 고가의 AI 솔루션을 도입해도 얻는 수입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유지보수 비용이 더 큰 주객전도 상황이다.
매출 증가가 마진율 개선으로 이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판매관리비 구조도 발목을 잡는다. ▲개별 병원 시스템과의 연동 작업 ▲의료진 설득을 위한 전담 영업 인력 유지 ▲국가별·기관별 임상 데이터 추가 구축 등에 지속적으로 자금이 투입돼, 매출이 늘어날수록 판관비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인 것.
이는 비단 국내 의료 AI 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미국 의료진 업무 자동화 및 음성 인식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뉘앙스 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 2022년 상장폐지돼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바 있다. 미국 디지털 병리 분야에서 선도 기업으로 꼽히던 '패스AI' 역시 지난 5월 글로벌 제약사 로슈에 인수됐다.
상장기업 중에선, 미국 정밀의료 및 임상 데이터 분석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 템퍼스 AI가 지난 1분기 2억6900만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업계 상황이 의료 AI 자체가 가진 기술적 특징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관련 기술이 병원 현장에서 유의미한 재무적 성과로 이어지기까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실제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의 설문조사에 글로벌 헬스케어 경영진 응답자의 51%가 아직 AI 투자에 대한 수익률을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의미한 재무적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에 그쳤다.
더욱이 의료 현장에서 기존 병원 시스템과의 호환성 및 질환별 알고리즘 범용성 문제 등 기존의 파편화된 의료 AI 솔루션의 한계가 드러나는 상황이다. 플랫폼 및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필요성이 커지면서 의료 AI 기업들은 추가적인 인프라 체력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 것.
의료산업계는 현 상황을 단기 모멘텀 자금이 빠져나가고 펀더멘털 중심의 장기 자금으로 재편되는 과도기로 보고 있다. '바이오헬스 5대 강국 실현'과 'AI 3대 강국 도약'은 정부 기치이기도 한 만큼, 이 과도기를 넘기기 위한 정책적 배려와 인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신생 바이오 및 의료 AI 기업이 기술의 완전성을 증명하고 임상적 유효성을 안착시키려면,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인내자본 공급망과 정책적 유연성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해 A기업 관계자는 "신생 바이오 기업이 기술의 완전성을 증명하고 임상적 유효성을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호흡이 필요하다"며 "현재 한국의 바이오 섹터는 상장 유지 요건, 단기 실적 압박, 그리고 변동성이 큰 투자 심리 속에서 부침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가 글로벌 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술이 시장에 녹아들 수 있는 '인내의 시간'이 필수적"이라며 "세상에 없던 기술이 상식이 되기까지는 반드시 '입증의 계곡'을 지나야 한다. 혁신 바이오 기업들이 국내에서도 충분히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정책적 유연성과 시장의 지지적인 기다림이 동반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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