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미수, 배임, 횡령... 요즘 의사회의 소송전에서 빠지면 안 되는 단어들을 열거했다. 안타깝지만 현상이 그렇다.
최근 대한개원의협의회 내부에서 벌어진 신-구 집행부간 소송전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망신주기'를 통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들린다.
앞서 후임 노만희 회장은 대개협 법제이사의 법무법인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김일중 전 회장과 한동석, 장홍준 전 재무이사에게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액수만 무려 7억원.
노만희 회장은 회계와 관련한 인수인계를 받은 바 없어 회계 투명성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전임 집행부를 고소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침묵을 지키던 김일중 전 회장은 소송으로 비화되고 나서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맹세코 뒷돈을 챙긴 적이 없다"고 결백을 강조했다.
결론이야 법원이 판단할 문제지만 사안의 핵심은 소송전이 아니다. 바로 소송의 성격이다. 내분에 휩싸여 수 년간 고소, 고발전을 펼치고 있는 산부인과의사회를 보자.
2011년 산부인과의사회 회원 일부는 박노준 산부인과의사회장을 겨냥한 비자금 3억원에 대한 업무상 횡령 및 배임, 보험업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다.
'혐의 없음' 판결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4년. 소송을 당한 집행부도 상대편을 향해 업무방해, 명예훼손, 절도 미수 등으로 고소했지만 기소유예 판결이 나왔다.
A4 용지를 가져갔다고 절도로 고발하는 치졸한 행태는 비단 산부인과의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경기도의사회 역시 김세헌 감사가 선관위 회의 자료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절도죄와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혐의 없음'으로 나왔다.
일명 망신주기용 고소, 고발전이다.
절도나 배임, 횡령과 같은 거창한 혐의로 고소하는 순간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 "혹시?"라는 마음은 누구나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 반사이익은 고소, 고발을 제기한 이들의 '도덕적 우위'로 귀결된다.
이런 피로감 때문인지 무분별한 소송전에 의문을 갖는 회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모 의사는 대개협 소송전을 보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가 막힌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학회나 의사회를 운영하다 보면 100% 증빙할 수 없는 불가피한 회계 내역도 존재한다는 하소연이었다.
다시 말해 마음 먹고 "먼지를 털겠다"고 작정하면 누구나 도덕적 멍에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김일중 전 회장은 기자회견 중간 눈물을 흘리며 북받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눈물이 악어의 눈물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적어도 목적이 정당하려면 수단의 정당성도 확보해야 한다. '아님 말고' 식의 소송전밖에 방법이 없을까. 먼지를 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미간이 찌푸려지는 이유가 비단 미세먼지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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