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대 손상호 전공의, 감염병 연구 현장경험 쌓고 싶어도 제도적 장벽 역학조사 전문성 강조한 제도가 수련 기회 박탈…연차별 교과과정 부재도 아쉬움 토로
"요즘 홍역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 예방의학과 교수가 레지던트와 함께 직접 해당 지역을 찾아가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만들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고대의대 예방의학과 3년차 전공의 손상호 씨(32·대한전공의협의회 총무부회장)는 레지던트로서 역학조사를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손 씨는 고대법대를 졸업하고 고대의전원에 입학해 예방의학과 의사가 되고자 수련을 받고 있는 전공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듯 원인을 찾아가는 감염병 역학연구가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감염병 연구를 하고 싶어서 이 길을 택한지 올해로 3년째에 접어들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된 역학조사 경험이 전무하다.
"솔직히 전문의를 취득하고 특정 기관에서 근무하게 됐을 때 역학조사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 두렵다. 복지부 고시나 대한의학회가 정한 역량 평가 기준에서는 '예방의학과 전공의는 지역사회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역학조사를 할 수 있어야한다'고 적혀있지만 현실에선 경험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손 씨에 따르면 국내 사스(SARS) 등 신종감염병 이슈 직후 바뀐 정부의 역학조사 기준 때문이다.
역학조사의 전문성을 이유로 질병관리본부, 보건소, 각 지역별 감염병 관리사업단 등에서 자체적으로 역학조사원을 채용해 역학조사를 하면서 예방의학과 전공의는 참여조차 할 수 없게된 것.
특히 복지부는 방역행정가 역할을 할 우수인력을 확보하고 장기근무를 유도하고자 '방역직'을 신설하고 미국 CDC 역학전문요원(EIS; Epidemic Intelligence Service)과정 위탁교육 제도를 벤치마킹해 '방역수습 사무관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방역수습 사무관제도는 2년간 EIS과정을 거치며 감염병 현장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으로 실제로 해당 과정을 마치면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복지부도 제대로 된 역학전문요원을 양성하자는 취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문제는 처우 기준. 미국의 EIS과정에 있는 이들은 억대 연봉에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반면 한국은 낮은 급여에 프로그램도 허술하다.
실정이 이렇다보니 예방의학과는 물론 전문의 지원은 없고 그 빈자리를 퇴직한 한의사, 수의사 등 보건의료인이 채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복지부가 역학조사요원 지원 자격에 보건의료인이면 누구든 가능하다고 열어뒀기 때문이다. 미국은 1년 이상의 임상수련을 거친 의사이거나 의사 이외 보건의료 전문의의 경우 공중보건학 분야 석사 이상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가령 최근 홍역 확산과 관련해 역학조사를 실시할 때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정부가 실시한 교육을 받은 역학전문요원을 투입하고 반면 전공의는 철저히 배제된다.
"과거에는 교수와 역학조사도 나가고 이를 통해 역학조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경험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 길이 아예 막혔다. 역학조사는 책으로만 배웠을 뿐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했다. 답답하고 불안하다."
다시 말해 정부는 역학조사의 전문성을 높이겠다고 별도의 교육과정을 만들고 인력을 양성했지만 의사에게는 외면받고 미래의 역학전문가로 키워야할 전공의는 수련받은 기회조차 박탈하는 결과만 초래한 셈이다.
손 씨는 역학조사 경험을 쌓을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하며 예방의학과 수련 교과과정이 부실한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가령 내과 전공의라면 1년차에 병동 환자를 케어하고 2년차에 특정 검사 및 술기를 경험하고 직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 연차별로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지만 예방의학과는 병원별로 다르고 차이가 크다."
즉, 내과의 경우 수련병원과 무관하게 공통적으로 자격을 갖춘 전문의를 배출하는 반면 예방의학과는 공통된 수련 교과과정이 없다는 지적이다.
내년이면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손 씨는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연차별 수련교과과정에 따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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