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하 의원·대전협 토론회 "무면허 보조인력 눈치보고 배운다" 수련시간 계측 전산시스템 놓고 격론…복지부 "수련환경 개선 노력"
"전공의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열악한 수련환경이 개인 능력 문제인가, 주 80시간 문제인가, 수련교육 문제인가. 수련병원이 전공의들을 하층민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전공의협의회(회장 박지현) 공동주최로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공의법 3년, 전공의 근로시간 이대로 괜찮은가' 정책토론회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던진 질문이다.
이날 토론회는 전공의들이 수련 현장에서 느끼는 자괴감과 수련교육 개선 그리고 정부의 예산지원 등을 중심으로 격론을 벌였다.
전공의법에 따라 2017년 12월 23일 전공의 주 80시간 등 수련 규칙 의무화가 시행됐으나, 수련병원의 위반 사례는 지속됐다.
복지부가 2018년 전공의 수련환경 평가 결과, 전체 수련기관 244개소 중 94개소(38.5%), 상급종합병원 42개소 중 32개소(76.2%)가 전공의법을 위반했다.
패널토론에서 전공의협의회 손상호 고문은 수련 현장에서 전공의들이 느끼는 자괴감을 전달했다.
손상호 고문은 "모 수련병원은 전공의와 수련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고 일반 직원 계약서를 요구했다. 계약서를 거부하자 월급도 주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결국 계약서를 체결했다"면서 "기피과목 전공의는 수련을 그만뒀다. 무면허 보조인력에 비해 의사로서 나은 게 뭐냐, 그들에게 배우고 눈치를 본다고 했다"며 전공의법 시행 이후 수련 현장의 실상을 토로했다.
그는 "복지부 예산 72조원 중 전공의 관련 기피과 전공의 해외 단기연수 예산은 고작 1억원이다. 외과 등 기피과 10개과에 1억원을 쓰고 기피과가 육성되길 바라나"고 반문했다.
손상호 고문은 "수련병원들은 경영 어려움을 전공의 주 80시간이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전에는 병원이 안 어려웠나. 주 80시간과 주먹구구식 수련과정이 아니라 전공의를 어떻게 가르치고 미래 의사로 양성할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복지부를 향해 쓴소리를 가했다.
그는 "정부가 전공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병원 생존을 위한 전공의 정원 배정이 아니라 실제 필요한 정원과 엄격한 수련교육 그리고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전공의 지원에 27조원을 사용하는 미국과 1억원을 쓰는 한국과 전공의 수련환경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의 과감한 투자를 촉구했다.
암시민연대 최성철 대표는 "암 환자 등 중증환자들은 전공의들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은데 물어보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 36시간 연속근무로 지친 전공의들의 힘든 상황에 공감한다"면서 "왜 환자들이 의사를 안쓰러워하고, 동정해야 하나. 전공의 처우개선을 위해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와 의사 인력 확충 등 여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토론회는 병원협회 병원평가부위원장으로 나온 고려대 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 은백린 교수 발언을 시작으로 불이 붙었다.
은백린 교수는 "고 신형록 전공의 모체인 소아과학회 이사장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고 유감을 표하면서 "전공의는 근로자이며 피교육자인 특별한 존재다. 후배 의사들에게 10년 뒤 나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환자를 봤으면 좋겠다고 항상 말한다"며 과거와 달라진 수련환경을 설명했다.
고대 구로병원장을 역임한 그는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에서 꼼수로 전산시스템을 개발해 전공의 근무시간을 차단한다고 하는 데 억울하다. 전공의 수련시간 계측 방법은 전산시스템 로그인과 로그아웃이다. 많은 전공의들이 관심이 없어 로그아웃을 안 해, 로그아웃 시스템을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은백린 교수는 "수련병원도 같은 식구다.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수련제도 정부 지원과 책임지도 전문의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공의협의회 이경민 수련이사(동국대 일산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전공의법 시행 6개월 이전 당직실에서 집에 못가고 속옷도 빨았다. 순환당직 수련병원 당직실은 침대 커튼도 없고 남녀 전공의가 사용했고, 여성 전공의 샤워실도 없어 환자들과 공동 사용했다"며 전공의법 시행 이전 수련상황을 환기시켰다.
그는 "일반 회사는 주 52시간 근무해도 잘 돌아가는데 왜 병원만 전공의들을 주 80시간 일을 시키나. 수련과정에서 지도전문의와 선배 전공의들에게 '이 약을 왜 처방하나요, 왜 이 시술을 하나요' 물으면 역정을 내거나, 원래 그렇게 한다는 대답 뿐"이라며 "전공의들의 능력 문제인가, 수련교육 제도 문제인가"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경민 수련이사는 "수련병원이 전공의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전공의들을 하층민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백린 교수는 "여성 전공의 별도 숙소와 샤워실이 없는 수련병원의 경우, 전공의 수련을 못하게 막아야 한다. 남녀 숙소와 샤워실은 수련 평가항목에도 있다"고 답변했다.
전공의협의회 박지현 회장(삼성서울병원 외과 전공의)은 "기피과인 외과를 전공하며 고난도 수술을 수련하고 있지만 전문의 취득 후 정작 하지정맥류와 피부미용, 고혈압과 당뇨를 진료하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은백린 교수님의 말씀은 서울 대형병원 수련환경이고 지방 단과 수련병원에서 혼자 수련하는 전공의도 보호해야 한다. 수련병원 중 전공의를 이용해 전산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 전공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 처방과 무면허 보조인력 대리 사용 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은백린 교수는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전산시스템 로그인과 로그아웃은 전공의 주 80시간 준수를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다. 근무시간 계측에 관심 없는 전공의들이 많아 로그아웃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재차 설명했다.
전공의협의회 이승우 전 회장과 기동민 전 회장도 청중 질의를 통해 제일병원 사태 발생 시 복지부의 조속한 전공의 이동수련 허용과 수련병원의 전문의 고용을 촉구했다.
토론이 격해지자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이 뼈 있는 조언을 했다.
안덕선 소장은 "제대로 된 전공의 정원 산정을 위한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수련교육에 들어가는 최소한 사회적 비용을 고민해야 한다.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 논쟁과 불확실성 수련환경 하에서 제대로 된 수련교육을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복지부가 좋은 의사 양성을 원한다면 지원해야 한다. 상대가치점수에 녹아있다는 변명은 어처구니없다"며 수련교육 예산지원을 회피하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복지부는 개선된 수련환경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일관했다.
의료자원정책과 임영실 보건사무관(가정의학과 전문의)은 "전공의 교과과정 개선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3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보건사회연구원을 통해 전공의 적정 정원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수련비용 지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의료 질 평가지원금 전체 8%에 해당하는 560억원이 수련 항목"이라고 답변했다.
임 사무관은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 확대 노력도 지속하겠다. 전공의 급여지원 관련 제도와 환경이 다른 미국과 영국 상황에 직접 대입은 어렵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고 신형록 전공의 사망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보다 안전한 개선된 수련환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윤소하 의원은 인사말에서 "전공의들은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전공의 근로시간 문제는 희망 없는 절망에 가깝다.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전공의들과 환자들을 위해 이 문제를 짚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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