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완치자의 혈장을 수혈, 감염자의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혈장치료(혈장요법)'를 보는 전문가의 견해는 양극단을 달린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듯 상반된 결론의 연구들이 현재 시점에도 이어져 나오고 있다.
사스 및 메르스 당시 시도된 혈장치료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사태에서도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미국 FDA가 혈장치료를 긴급 승인하면서 이제 효과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임상은 '치료제'로서 승인을 받기 위해 면밀한 임상 설계를 거쳤다는 점이 그렇다.
혈장치료와 혈장치료제의 차이는 무엇일까. 최근 진행되고 있는 혈장치료제 관련 임상이 효용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FDA의 긴급 승인의 의미는?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23일 FDA가 혈장치료를 코로나19 치료 방식으로 긴급 승인(emergency use authorization)했다.
혈장치료는 바이러스 감염 후 완치된 사람의 면역력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완치자의 혈장에는 바이러스 감염후 회복 과정에서 형성된 항체가 존재하는데 이를 수혈을 통해 감염자에 주입해 완치자와 비슷한 항체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이론상으로는 이미 동종의 바이러스를 경험한 항체는 항원을 쉽게 인식하거나 대량의 대항 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 완치자의 항체가 감염자에게 주입되면 바이러스로 인한 증상 완화 및 치료 기간 단축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혈장요법에 대해선 아직 의학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점. 원인은 병의 위중에 따라 대조군/시험군 설정이 완벽할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시험군에는 혈장치료를, 대조군에는 위약을 투여해야 명확한 시험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치료에선 스테로이드부터 항바이러스제까지 다양한 약물이 함께 투약된다.
혈장치료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견해는 양극단을 달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임상 설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 "효과 있다"와 "없다"는 상반된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실제로 FDA는 이번 승인을 두고 투약자 7만명 중 2만명을 대상으로 효용성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체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의 '긴급 승인'에 그친다. "잠재적 이익이 잠재 위험을 상회"하기 때문에 FDA 승인은 굳이 치료를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논리다.
그렇다면 혈장치료제는 어떻게 될까. 의료 행위인 '치료'가 아닌 '치료제'라면 보다 엄격한 임상 과정 및 평가 기준이 존재하지 않을까.
식약처 관계자는 "FDA가 임상 평가가 완벽하지 않은데도 혈장치료를 승인한 것은 말 그대로 코로나19 사태의 긴급성을 더 중대하게 평가한 결과"라며 "국내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혈장치료가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치료제는 의료기술인 치료와 다르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혈장치료제는 임상에서 분명한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며 "치료제가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회복까지의 기간 단축까지 포괄적으로 효과로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혈장치료제 임상 2상 진입…"논란 종지부 찍는다"
국내에서는 혈장을 수혈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 정교하게 설계된 임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혈장치료제는 녹십자의 'GC5131' 임상 2단계에 접어들었다.
수혈된 피를 그대로 사용하는 혈장치료와 달리 정제된 항체 단백질만 사용한다는 점에서 제약사는 효용성 논란은 기우라고 자신하고 있다.
녹십자 관계자는 "혈정치료제는 코로나19 완치자 혈장 속 항체 단백질인 면역글로불린을 따로 분리해 고농도로 농축시켜 만든다"며 "면역 기능 단백질만 농축하기 때문에 이론상 효과가 없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완치자가 제공한 공여 혈장이 모두 균질한 것은 아니"라며 "그간 혈장치료 요법에서 논란이 됐던 부분은 공여자의 혈장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데서 기인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성인부터 고령 완치자이며 개인 기저 질환 여부, 생활 습관에 따라 혈장의 상태, 면역 단백질의 활동성 차이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균질화한 치료제는 치료(요법)와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것.
녹십자는 혈장치료의 효용성 논란을 이번 임상으로 종지부를 찍는다는 계획이다. 그간 논란의 시발이 투여 약물이 균등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는 점을 의식, 시험군과 대조군의 투여 약물을 통일했다.
2상의 유효성 평가는 ▲투여 전 기저치 대비 임상시험용 의약품 투여 후 7, 14, 21, 28 일째 9 단계 순위척도점수가 2 점 이상 감소 ▲1 또는 2 단계에 도달한 대상자의 비율로 설정됐다.
시험군은 세 그룹이다. 각각 면역글로불린 2,500mg(50ml), 5,000mg(100ml), 10,000mg(200ml)을 투약받는다. 대조군은 생리식염수 50mL로 설정됐다.
녹십자 관계자는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한쪽은 면역글로불린만 투약하고 다른 한쪽은 생리식염수만 투약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며 "다만 효용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두 투약군 모두 투입 약제는 통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약군 모두 같은 약제, 용량을 투약받고 면역글로불린 투약 여부만 다르기 때문에 확실한 효용성을 임상을 통해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임상을 위한 충분한 공여 혈장은 확보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간 시행된 혈장치료 효과를 살핀 연구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시험군과 대조군의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 한 환자는 램데시비르와 혈장을 다른 한쪽은 스테로이드와 위약을 받는 등 변인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번 임상은 다르다는 것.
최준용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과거 혈장 관련 연구는 코로나19의 위중성 때문에 여러 약제가 동시 투여되는 경우가 많아 정확히 어떤 치료의 효과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다가 채취자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혈장요법의 효용이나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며 "특정 채취자와 수여자의 적합도 등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료 기한 단축도 인정…혈장 치료제 성공 가능성은?
과거를 살펴보면 치료 기한의 단축을 치료제의 효과로 인정해 승인된 사례가 존재한다. 식약처의 언급대로 치료 기한 단축을 포괄적으로 인정한다면 녹십자의 혈장치료제 역시 임상 3상 통과 가능성은 낮지 않다.
무엇보다 유효성 평가 2차 변수가 다양하게 설정된 까닭이다. 특히 평가 지표에는 치료 기한 단축에 관련된 부분들이 대거 포함됐다.
치료 기한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투여 전 기저치 대비 임상시험용 의약품 투여 후 9 단계 순위척도 점수가 2 점 이상감소하거나 1 또는 2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의 기간 ▲임상시험용 의약품 투여 후 28 일째 되는 날까지의 산소 치료 일수 ▲임상시험 기간 중 산소 치료 개시한 대상자의 비율 및 산소 치료 일수 ▲임상시험 기간 중 Ventilation 개시한 대상자의 비율 및 Ventilation 일수 ▲임상시험용 의약품 투여 후 28 일째 되는 날까지의 입원 일수가 있다.
감염학회 관계자는 "항바이러스제 램데시비르 특례수입 결정 당시 정부가 언급한 효용성은 회복 시간 단축이었다"며 "회복 기간 단축을 치료제의 1차 효과로 볼 수 있냐는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적절한 치료제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괄적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제된 고농도 면역글로불린을 주입한다면 이론상 다양한 지표에서 치료 일수 감소가 관찰될 수 있다"며 "평가 지표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효용성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외 녹십자는 평가 지표로 ▲임상시험용 의약품 투여 후 28 일째 되는 날까지의 사망률 ▲임상시험용 의약품 투여 후 1, 3, 5, 7, 10, 14, 21, 28 일째 바이러스 음전, CT Value및 titer ▲임상시험용 의약품 투여 후 7, 14, 21, 28 일째 9 단계 순위척도 점수 및 투여 전 기저치 대비 변화량 등 항체 활성화시 변화하는 바이러스 지표값을 총망라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평가 지표라는 것이 위약과의 비교이기 때문에 임상 통계적인 유의성을 확인하면 임상 통과 가능성이 있다"며 "렘데시비르의 경우 치료 시간 단축도 치료제의 효과로 폭넓게 인정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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