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대 홍정원 교수 의생탐구➅세종18차 월동대 연세의대 홍정원 교수 "제한된 환경 속 환자 케어 한계 분명…책임감 필수"
"한국에서 날고 기던 의사도 현지에 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만큼 주어진 여건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빠르게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빙하, 천혜의 자원 등으로 잘 알려진 '남극'은 일반사람들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한번 쯤 방문해보고 싶은 지역이다. 실제로 방문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면 그 마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한정된 숫자지만 극지연구소 월동연구대의 의료를 책임지는 일원으로 참여가 가능한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세종18차 월동대로 이러한 기회를 먼저 경험한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홍종원 교수(대한극지의학회 학술이사)는 경력에 한 줄을 남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양한 경험의 차원에서 남극방문을 추천했다. 하지만 막연한 동경은 금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홍종원 교수가 남극을 방문한 것은 2004년 12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당시 그는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에서 의료를 담당했다. 각 월동대는 약 17명 내외로 연구원 외에 각 분야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대개는 1인)으로 구성되며 의료진의 경우 1명이 포함된다.
남극에서 의료 활동의 중심은 당연하게도 같은 대원들의 건강관리다. 다만, 일반 임상 현장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환자가 발생하면 대처하는 의료가 아닌 건강관리 영역에서의 역할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남극에서 의료는 일차 진료의 수준에서 끝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증 질환이나 외상 환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세종기지가 구비하고 있는 장비로는 치료가 어렵다는 점에서 사전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더라도 남극이라는 환경의 한계 때문에 후송조치까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가령 이비인후과나 안과 질환의 경우 진단 장비만 있으면 되는데도 여건이 되지 않아 후송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결과적으로는 별일 아닌 경우가 많지만 자칫 잘못된 판단으로 상황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 빠른 판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결국 많은 진료 영역에서 장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많고 또 장비가 있다 하더라도 진료 자체가 힘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 그렇기 때문에 홍 교수는 "경험이 많은 의사도 남극에 가면 진료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특히, 남극에서 대원의 건강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제한된 인원에서 대원 한명이 각자 맡은바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명이라도 공백이 경우 업무 자체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 이는 의료진 역시 마찬가지다.
홍 교수는 "한 대원이 넘어져 골절이 됐는데도 자신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이를 숨기는 경우도 있었고 가벼운 질환이 분명한데도 후송을 원했던 대원도 있다"며 "자신의 신체 상태를 과대평가하거나 반대로 과소평가하는 경우도 있어 의료진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료진으로 남극을 방문할 수 있는 방법은 총 세종과학기지, 장보고과학기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등 총 3가지다. 홍 교수는 의대생들이 향후 남극을 방문하기를 원한다면 연구보다는 의료진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권했다.
연구진으로 참여하기에는 연구 분야나 규모면에서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게 그 이유. 세종기지와 장보고지의 경우 극지 연구소에서 대원을 선발하며, 쇄빙선은 배를 관리하는 선사에서 의료진을 선발하고 있다.
이밖에도 잠시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상태지만 남극의 루트를 개척하는 K루트사업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매년 인원 선발 시 경쟁이 있을 수 있지만 예상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천천히 기다린다면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게 홍 교수의 조언이다.
의대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선배를 만나며 빠지지 않는 질문은 '어떤 전문과목이 그 분야에 유리한가?' 그러나 홍 교수는 남극의 경우 뚜렷하게 유리한 과가 없다고 언급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한된 환경이기 때문에 적정한 과는 없지만 응급의학과가 조금 더 익숙한 환경일 수는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원자가 적어 과를 골라가며 대원을 선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과보다 잘 적응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래전에 남극을 방문했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남극에 방문해보고 싶다고 밝힌 홍 교수.
그는 최근 대한극지의학회의 일원으로 남극에 방문하는 의료진 처우의 현실화나 의료사고 분쟁의 여지가 발생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선배 의사로서 세심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는 극지의학에 관심을 가지는 후배들에게 막역한 동경보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남극에 방문하면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 국내 의료시스템 특성상 졸업과 인턴, 레지던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1년 이상의 경력단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대원으로 선발되면 원정 전 준비 기간과 돌아온 뒤의 기간 등을 합쳐 1년 이상의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며 "남극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지만 젊은 의사로서 시기도 소중한 만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남극 생활이 만족스러웠고 신선한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나이의 제한이 없는 만큼 나중도 충분히 가능한 만큼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추천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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