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한의사 뇌파계 사용에 대한 최종심 일정을 논의하면서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의·한 갈등 2차전이 예고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에 대한 해외 학계 우려를 강조하고 나섰고, 대한한의사협회는 대만과 한·중의사 의료기기 사용 확대를 선언하면서 관련 갈등이 국가대항전으로 비화하는 모습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한의사 뇌파계 사용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 기일 심리를 지정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10년 한의사 A씨가 뇌파계로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해 한약 치료한다고 광고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업무정지 3개월을 당한 건이다. 이에 한의사 A씨는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에서 승소, 2심에서 패소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뇌파계는 전기생리학적 변화를 바탕으로 뇌의 전기적인 활동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서 한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이 불법이라는 지적이다. 또 그 근거로 해외 학회들이 의협에 제출한 의견서를 들었다.
뇌파계는 1924년 독일 신경정신과의사 한스베르거가 뇌전도(EEG) 기법을 이용해 발명한 것으로, 이후 수많은 의학적 지식이 축적돼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진단·치료에 쓰이고 있는 설명이다.
뇌파계는 현대의학에서 활용될 것을 상정하고 개발·제작한 것이며, 이를 사용하는 것은 한의학적 의료행위와 무관하다는 것.
앞선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대법원 판결 근거였던 보조수단과 관련해서도, 해당 사건은 한의학에 존재하지 않는 질병명인 파킨슨병을 진단하기 위함인 만큼 한의학적 진단의 일환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세계신경학연맹 ▲국제 파킨스병 이상운동질환학회 ▲아시아 오세아니아 신경과학회 등 해외 학회 및 관련 기관에서도 한의사 뇌파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며 관련 의견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 학회는 뇌파계는 신경학적 전문 지식을 쌓은 전문가에 의해 사용돼야 하며 단순한 뇌파검사는 파킨슨병, 치매 진단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의협은 "뇌파계 등 한의사 면허범위 외의 의료행위와 의과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는 불법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정부에는 한방 무면허의료행위에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한의사협회가 대만과 한·중의사 의료기기 사용 확대를 선언하면서 관련 갈등이 심화할 전망이다.
한의협은 지난 11일 제93회 국의절을 맞아 서울시한의사회 등과 함께 국립대만대학교 부속병원 국제회의센터를 방문하고 ▲중화민국 중의사공회 전국연합회 ▲타이베이 중의사공회 등과 공동으로 '2023 전통의학 의료기기 신전망 선언'을 발표했다.
인류 건강증진을 위해 대한민국·대만 한·중의사들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확대를 선언하고, 이를 적극 실천해 나가자는 취지다.
양측은 공동 선언문을 통해 우리나라는 2003년 한의약육성법을, 대만은 2019년 중의약발전법을 통해 각각 전통의약 발전을 위한 법적 근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양국 전통의학은 코로나19 사태에 국가의 의료위기를 안정시키는데 일조하는 등 많은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또 대만은 2017년 "중의사는 X-ray, 혈액 채취 및 소변·대변검사 등을 위해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정부의 결정을 얻어냈고, 대한민국은 2022년 "한의사는 초음파기기를 활용하여 환자의 병세를 진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양국 한·중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만큼, 이를 지속하기 위해 협력하자는 취지다.
이와 관련 한의협은 홍주의 회장은 "이번 선언문 발표로 양국 간 전통의학 교류와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며 "나아가 현대 진단기기 사용 확대로 전 세계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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