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사 임금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보건통계가 나오면서 거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통계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에서는 관련 지표 분석이 엉터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일각에서는 의대 증원을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통계를 왜곡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내고 있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3'에 대한 분석 근거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정부는 OECD 통계를 통해 2020년 기준 국내 의료기관에 고용된 봉직의의 연 평균 임금소득을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 19만2749달러로 분석했다. 이는 한화 2억4583만 원으로 OECD 28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숫자다.
같은 해 한국 개원의의 연 평균 소득도 2020년 29만8800달러(한화 3억8126만 원)로 관련 통계가 있는 벨기에 다음으로 높았다.
이 같은 고임금이 의사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더해지면서 의료계가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상황이 직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이 커지는 모양새다.
■GDP 대신 PPP 사용해 생긴 오류…"실제 임금과 차이 커"
반면 의료계는 이 같은 분석결과가 GDP 대신 PPP를 차용해 생긴 오류라고 지적하고 있다.
GDP는 명목상 국가 총생산을 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다. 반면 PPP는 다른 물가나 환율 수준을 반영해 실제 국민의 구매력 등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즉 GDP는 변수에 의해 결과 값이 변하지 않는 국민생산량에 대한 총액이다. 하지만 PPP는 물가가 낮은 나라에선 임금이 더 높게 계산되는 등 물가변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지표라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
이 때문에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선 GDP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복지부 보건통계에 PPP 사용하면서 실제와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지적인 셈이다.
정부가 관련 발표에서 통계 당시인 2019~2020년 미국달러 환율이 아닌 최근 환율을 적용한 것에서도 지적이 나온다. 2020년 환율은 1180.3원인 반면 최근 환율은 1276.4원으로 100원 이상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류를 감안해 우리나라 의사들의 1년 임금을 다시 계산하면 봉직의 1억 3897만 원, 개원의 2억 449만 원으로 정부 발표보다 1~2억 원이 적다는 설명이다.
실제 2023년도 OECD 헬스데이터에서 2020년 기준 전문의인 개원의 1년 임금을 산출하면 대한민국은 2억433만 원에 그친다.
같은 조건을 대입했을 때 도출되는 국가만 봐도 ▲아일랜드 2억5156만 원 ▲아이슬란드 2억2595만 원 ▲이스라엘 2억1981만 원 ▲덴마크 2억1735만 원 ▲독일 2억1187만 원으로 우리나라보다 높다.
여기서 기준을 일반의인 개원의로 바꾸면 독일 3억1099만 원, 우리나라는 1억6734만 원으로 격차가 벌어진다.
설정 값에 따라 임금에 1000만 원 수준의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의사 임금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의료계 지적이다.
■더 높은 환율 대입해 결과 값 상승…OECD 세부분류도 불분명
특히 OECD는 개원의와 봉직의를 상위 분류로 두고, 이를 일반의와 전문의로 또 다시 구분하고 있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다.
즉, OECD 기준에 따르면 관련 통계는 4가지 분류로 결과값이 도출돼야 하지만 정부 발표에선 개원의와 봉직의에 대한 구분만 있어 오해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
전문의와 일반의의 수익구조가 다르고 전문의끼리도 과에 따라 임금 차이가 큰데, 정부가 이를 하나로 합치면서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도 불분명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KMA 폴리시가 이 같은 OECD 분류를 적용해 재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의사 임금 순위는 정부 발표와 차이가 컸다.
KMA 폴리시 박정훈 연구위원에 따르면 전문의인 개원의 임금 자료가 있는 9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2위를 차지했다. 일반의인 봉직의 임금은 17개 국가 중 6위, 일반의인 개원의 임금은 12개 국가 중 9위에 그쳤다.
이와 관련 KMA 폴리시 김기범 보험정책위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나라 의사가 독일보다 의사 임금이 높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다른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의사 임금은 1등을 할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입맛대로 항목을 제외하고 생활물가 까지 적용하면 당연히 이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봉직의여도 전문과에 따라 임금이 천차만별인데 고임금인 전문과만 뽑아 통계를 낸다면 그것은 평균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비교적 물가가 저렴해 PPP를 대입하면 임금이 더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며 "단순비교에 부적절하고 PPP를 국가별로 비교할 수 없다고 명시하면서까지 사용하는 의도가 궁금할 따름으로 통계는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면 공정하지 않은 자료가 된다"고 반박했다.
■국가 간 근무시간·세금 차이도 미반영…의정연 "반박 나설 것"
이는 의사의 근무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지표라는 것에서도 지적이 나온다. 실제 보건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이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의사들은 한 주 평균 48.1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의사 열 중 여섯은 주 6일 이상 근무하고 있으며, 14.4%는 일주일 내내 일했다.
의정연 역시 정부 통계의 오류를 지적하며 이를 반박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전문 회계사를 통해 OECD 통계를 다시 계산해 정부 발표가 사실인지 확인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의정연 우봉식 원장은 "PPP는 구매력 기준이이서 적용 시 모든 지표가 올라가는데 이는 실제 받는 임금과 차이가 있다"며 "더욱이 정부 통계엔 세금이나 연금, 근무시간 등이 모두 고려돼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소득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결과 값만 보는 측면이 있어 상당히 문제가 많은 사례다. 지금의 현안이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회계사를 통해 이를 반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점에서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식 반박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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