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중심병원을 추진하기에 앞서 정의부터 바로 설정 해야 한다. 전공의가 없는 병원을 뜻하는지, 전공의 역할을 PA가 대신하는 병원인지, 전공의와 PA가 공존하는 병원인지가 중요하다"
이대서울병원 주웅 병원장은 2일 메디칼타임즈와 한국병원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체한 '전문의 중심병원 대전환 가능한가?'를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 나와 전문의 중심병원을 추진하려면 정의부터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서울병원은 지난 2019년 2월 진료 개시 후 5년 동안 전공의 없는 병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개원부터 전공의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의정갈등으로 인한 여파 없이 평소의 진료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주웅 병원장은 "개원할 때 전공의가 없는 것 각오했다"며 "병원에 온 교수들도 다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운영이 가능했다. 이 사태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연 선택이 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의정갈등 사태를 계기로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고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모든 상급종합병원이 참여 가능하며 연간 약 3.3조원씩 총 3년 동안 투입된다.
하지만 주웅 병원장은 이미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병원들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이대서울병원 개원 후 4000억가량의 빚을 지며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계속 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형제병원인 목동병원이 있었던 점과 코로나19 사태 때 거점병원으로 활약하며 지원금을 받았던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시기와 운이 모두 따라줬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며 "전공의 없이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대서울병원은 전공의 없이 병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처음부터 '진료지원간호사(PA)' 양성 및 배치에 집중했다. 현재 이대서울병원은 PA간호사 약 300명이 근무 중이다.
주웅 병원장은 "전공의 없이 개원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 중 하나가 PA인력을 신중하게 구성한 것"이라며 "처음 시작할 때 진료과목별로 어떤 과는 '3교대 인력이 필요하다', '교수 1명당 PA가 1명 필요하다' 등 다양한 요구가 있었는데 이를 모두 수용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불법이던 PA인력은 간호법 통과로 합법화되며 마무리됐지만 아직 후속조치 등 디테일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예를 들어 간호법은 간호사만 PA로 인정하는데 의료현장에서는 방사선사, 조무사 등 역시 PA 역할을 하고있다. 간호법에 빈틈이 많기 때문에 병원들이 전공의 빈자리에 PA인력을 채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연착륙을 위해서는 '전문의 중심병원' 정의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웅 병원장은 "전문의중심병원이 단순 전공의가 없는 병원인지, 전공의 없이 돌아가는 병원인지, 전공의 역할을 누군가가 대체하는 병원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전공의가 없이는 미래 전문의가 없기 때문에 전공의 없는 병원은 모순된다. 궁극적으로는 전공의 역할을 전문의와 PA인력이 나눠하는 병원을 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공의가 없기 때문에 전문의 중심병원을 만들라는 것은 전셋값 폭등 호소에 집을 사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전공의 없는 병원들의 최종 목표는 전공의 있는 병원이다. 전공의 업무를 언제까지 전문의가 할 수는 없으니 전공의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의 수도권 상종 대거 흡수 우려…지방·종병 함께 고민해야"
의료전문가들은 정부의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정책에 대해 방향성은 공감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전문의 중심병원 도입으로 이들의 지위가 강화되면 수도권으로 인력이 쏠리며 또다시 지방의료가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세종충남대병원 김현정 전 기획실장은 "당직이 없는 진료과도 전공의 이탈이 길어지며 고강도 업무에 부담을 느껴 병원을 떠나는 전문의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굳이 지방에 전문의가 남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지방의료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상황 속 서울 상급종병이 중증에 집중하면 상급종병이 아닌 지방병원들은 경증과 중등증 환자들이 돗데기시장처럼 밀려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수가를 전혀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 속 얼마나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것인지 아찔하다"고 우려를 밝혔다.
끝으로 그는 "상급종합병원 개편이지만 배제된 2차병원들의 역할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상종 구조전환 마무리 후 2차병원을 개혁한다면 이미 모두 붕괴한 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PA인력, 전문의 대체 불가능…입원전담전문의 활용해야"
전문의 중심병원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입원전담전문의'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외과계 입원전담전문의연구회 정윤빈 회장은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는 외래 외에도 입원, 응급실, 협진, 수술 등 수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중 전공의 이탈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보인 분야는 '입원'으로 전공의 집단 사직 후 대형병원 대다수는 입원환자를 줄이며 위기에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정윤빈 회장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는 전임교수와 기금교수, 촉탁의, 입원전담의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의는 입원, 외래, 응급실 등을 모두 혼자 책임질 수 있는 1인 사업자와 유사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 전문의 숫자를 늘린다면 1인 사업자가 늘어나는 상황으로 단순히 외래일수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의 중심병원이 자리 잡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결국 부담이 큰 입원 분야를 주치의가 아닌 다른 전문의가 담당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병원은 비용 효과적 측면에서 해당 업무를 PA인력 중심으로 확대하고 싶겠지만 이들이 의료 질적 수준을 결정하는 전문의 영역을 100%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전문의 중심병원을 논하면서 입원전담전문의에 대한 얘기가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며 "다른 전문의들이 입원에 대한 부담 없이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의와 입원전담전문의, 전공의, PA 등이 포함된 팀 운영 수가 체계를 신설하는 것 역시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전문의 중심병원은 레토릭…'정의'부터 바로 세워야"
대한의사협회 채동영 부대변인은 전문의 중심병원 개편에 대해 "가장 의구심을 갖는 부분은 이를 왜 하는 것인가"라며 "하나의 레토릭(rhetoric)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문의 중심병원의 의미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동영 부대변인은 "전문의 중심병원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료계, 의사들 내부적으로도 모두 그림이 다르다"며 "상급종병 구조전환 정책은 이번 의정갈등 사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모든 정책이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보완하려는 시도로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6년 뒤 의대 졸업생이 증가한 상황에서 전공의 TO는 고정적이라면 의료시장에는 일반의가 대다수가 전문의 중심병원이 될 수 없고, 전공의 TO를 늘린다면 수련병원은 다시 전공의 과잉 사태로 임금이 낮은 이들을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 가도 전문의 중심병원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와 의료계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야 성공적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한데 현재로서는 정부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의료계와 전혀 공유되고 있지 않다"며 "상급종병 구조 개편에 앞서 의료계와 논의를 통해 전문의 중심병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병원정책연구원 박관준 실장 또한 "한국병원정책연구원에서 전문의 중심병원과 관련해 5개 병원의 12명 의료진에게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건비 증가로 인한 운영비 상승과 전공의를 대체하기 위한 PA 채용 불가피 등으로 전문의 중심병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문의 이탈 현상 등으로 전공의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향후 숙련된 전문의 배출이 어렵다는 우려 또한 많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이라는 정책의 방향성은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현행 의료전달체계에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 바람직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며 "또한 전공의 없이 중증질환을 다루는 종합병원 등의 세부 사례를 조사해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문의 중심병원, 단순 숫자 늘리기 아냐…의료계 숙원 해결 물꼬 틀 것"
보건복지부 강준 의료개혁추진단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이 단순히 전문의 숫자 늘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의료계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물꼬를 틀 것이라 강조했다.
강준 과장은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상종 운영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은 단순히 병원에 전문의를 늘리자는 것이 아닌 수가와 병상, 인력 수련 등 종합적으로 얽혀있는 의료전달체계 문제를 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는 주로 시범사업의 틀을 갖추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수가 개선과 성과 평가 등이 진행될 것"이라며 "의료개혁 중요과제로 추진하며 진행 상황을 의료개혁특별위원회뿐 아니라 건정심에 보고하며 안정적 운영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상급종병 구조전환을 시작으로 2차, 1차병원 또한 의료전달체계에 맞도록 개편을 추진한다.
강 과장은 "정부가 지향하는 바는 지역필수의료 위기와 초고령사회 진입이라는 위기 속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의 중심병원 시범사업은 의료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키가 아닌 물꼬를 트는 것이 목표"라며 "단순 재정 투입에서 끝나지 않도록 상급종병 지정평가 기준 개편과 연계하고 상급종병을 시작으로 2차, 1차병원 모두 구조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현장과 같이 하지 않는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현실 어렵지만 언젠가는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현장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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