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대변인 제도에 대한 의료계와 법조계 반발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실효성은 미미한 반면 전체 분쟁 건수가 늘어나 의료현장의 법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4일 법조계에서 '환자 대변인 제도'가 변호사법과 상충할 우려가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의료분쟁 조정 환자 대변인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오는 4월 30일까지 환자 대변인으로 활동할 전문가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중대한 의료사고에 변호사가 환자 대변인으로 조정 절차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대변인은 감정·조정 등 전 과정에서 환자에게 ▲법률 상담 ▲자료 준비 ▲쟁점 분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소송 분야에 일정 경험이 있는 변호사 50인 내외를 대변인으로 위촉할 계획이며, 조정 1건당 70만 원, 중재 1건당 100만 원의 수당을 책정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환자 대변인은 사실상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지위에서 이를 수행하게 해 변호사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률사무에 대한 대리·자문은 엄격히 변호사에게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지위는 소송법상 인정되지 않는 불명확한 위치에 있어, 이를 제도화하는 것은 법적 정합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환자 대변인이 이렇게 법적으로 불분명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면 실질적인 법률 행위가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개입이 조정제도의 민간성과 자율성을 해칠 수 있으며, 조정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이다.
한 변호사는 "이 제도는 변호사에게도, 환자에게도 딱히 이득이 없다고 본다. 실제로 변호사가 조정에 참여해도 대리인도 아니고 당사자도 아닌 애매한 지위다"라며 "이렇게 되면 비용 대비 전문적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 이런 제도는 오히려 변호사법 위반 소지만 만들게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입장에서도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법적 권한이 없는 '대변인'을 붙여주는 것이고, 결국 법적으로도 보호받기 어려운 허울뿐인 제도가 될 수 있다"며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법률 조력이 있어도, 그게 제대로 된 대리권도 없이 조정에 나선다면 실익도 없고 신뢰도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 반발은 더욱 크다. 분쟁 조정 과정에서 환자 측에 변호사가 공식 참여하면서 절차가 사실상 '준소송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정은 소송과 달리 간소하고 비대립적인 해결 절차여야 하지만, 그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
이는 의료진에게도 조정 단계부터 변호사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가중시키고, 결과적으로 방어 진료 확대나 고위험 진료 기피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 제도가 절차상 형평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자와 달리 의료인은 별도의 법적 지원 없이 조정에 임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실질적으로 조정의 균형이 환자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
분쟁 조정의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지면서 전체 분쟁 건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환자 대변인 제도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 경미한 분쟁 사례까지 조정 절차에 편입될 수 있으며, 이는 전체 의료기관의 행정 및 법률 대응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 병원 원장은 "환자에게 변호사를 붙여주는 순간 더 이상 조정이 아니다. 말 그대로 소송 전 단계가 되는 것이다. 환자와 대화하는 조정 단계를 법리 싸움을 대비하러 가는 상황으로 만들어 오히려 부담이 커진다"며 "말로는 조정 중립이라고 하는데 환자에게만 법적 조력을 제공하는 것이 어떻게 중립인지 의문이다. 절차 자체가 기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도 스스로 방어해야 하는데 조정 단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더 불리해질 수 있다. 게다가 제도 접근성이 높아지면 경미한 분쟁도 모두 조정으로 몰릴 것"이라며 "현장에선 조정 대응만으로도 진료 시간을 쪼개야 하고, 점점 방어 진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고위험 분야나 민감한 시술은 더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제도가 실효성 없이 갈등만 야기하는 전시성 행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미 시민단체나 공익법률 지원 활동 등으로 유사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별도의 국가 예산을 들여 제3의 지위를 신설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는 것. 이는 실효성 없이 중복 구조만 만드는 정책으로, 공연히 의료현장 신뢰만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의협 전성훈 법제이사는 "이 제도는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형식에 치우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며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은 '환자 대변인'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국가 예산을 들여 운영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시민단체를 통해 유사한 역할이 수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제도화해 절차적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라며 "결국 환자 권익을 보호한다기보다는, 갈등만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는 이제 보여주기식 정책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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