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상황이더라도 간호사가 독단적으로 환자 몸 속에 삽인하는 호흡기구인 '캐뉼라'를 제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전주지방법원군산지원 제1민사부(정성민)는 학교법인A가 환자 B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학교법인A 측 손을 들어줬다.
환자 B씨는 지난 2018년 12월 1일 전신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피부이식 등 수술 및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후 2019년 1월 23일 후두협착 증상에 대한 진단을 받은 후, 2월 7일 호흡곤란을 이유로 A학교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내원했다.
환자는 다음날 오전 8시 50분경부터 한 시간 정도 기관절개술 및 양측 성대 탐색술을 받았다.
수술 후 10시 50분 일반 병실로 입실했으나, 오후 5시 40분경 의식 혼수상태 및 호흡이 멈추는 현상 등이 나타나자 오후 6시 35분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B씨는 5월 10일 병원에서 퇴원했지만, 저산소성 뇌손상에 따른 불완전 사지마비의 신체장애로 인해 모든 일상생활 동작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환자측은 병원을 상대로 의료진이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아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게 됐다고 주장하며 업무상과실치상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환자는 수술 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태였다"며 "특히 혈전이나 가래 등 분비물로 인해 기관내관이 막히거나 기관 절개관이 폐쇄될 위험성이 높았지만, 의료진은 12시경 단 1회만 분비물을 흡인했을뿐 추가 조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환자의 응급상황 속 간호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의료진 과실을 지적했다.
환자측은 "오후 5시 43분 이미 도관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환자의 기관내관이 막혀 있는 응급상황이었음에도 오후 5시 49분 의사가 병실에 도착할 때까지 간호사 등은 환자의 내관을 제거하거나 교체하지도 않은 채 환자를 방치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정지 상태가 발생했음에도 즉각적으로 가슴압박을 시행하지 않았고, 이러한 조치로 인해 환자에게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18억91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책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북익산경찰서는 의료진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증거불충분으로 처리했다.
이후에도 법적 분쟁이 이어지자 A학교법인은 진료과정에서 의료진에게 어떠한 의료상 과실이 없어 환자에 대한 손해배상 채무는 존재하지 않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역시 의료진에게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자기록지 등에 따르면, 의료진은 오후 5시 40분경 응급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활력징후 측정 및 배뇨 관찰, 의식상태 파악, 동맥혈가스검사 시행 등을 통해 환자를 꾸준히 확인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오후 5시 환자의 금식을 해제하고, 5시 15분 유치도뇨관을 제거 후 동맥혈가스검사를 진행한 결과 수치가 정상범위 내에 있었다"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환자의 상태가 양호했으며 별도의 의료조치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원은 환자가 기관내관이 막혀 있던 상황 속, 의사 도착 전까지 간호사가 환자를 방치했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5시 43분 환자의 기관내관이 막혔을 당시 7분 정도 의료진이 이를 제거하거나 교체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된다"며 "하지만 당시 튜브로 석션이 안 들어간다고 기록돼있어 튜브 막힘이 의심되는 상태로 간호사가 이를 교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에 따르면 기관내관의 삽관 및 제거와 마찬가지로 기관절개관(T-캐뉼라)의 삽입과 제거는 의사 업무이며 기본 간호업무는 아니다"라며 "특히, 응급상황이라 하더라도 여분의 기관절개관(T-캐뉼라)이 없는 상태에서 간호사의 단독 판단으로 유일한 호흡기구인 캐뉼라를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환자가 일반병실에 입원한 오전 10시 50분부터 응급상황이 발생한 오후 5시 40분까지 의료진이 단 1회만 기관내관의 분비물을 흡인했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환자 보호자가 없던 중 분비물을 흡인했으며 도중에 보호자가 병실로 들어왔다고 진술했다"며 "오히려 의료진은 수술 후 분비물이나 혈전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해 흡인을 자주 시행하도록 했으나 보호자가 흡인을 거절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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