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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의사칼럼

나의 연인을 위하여

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발행날짜: 2025-03-03 05:00:00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유우선
투비닥터 편집팀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91) 수록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과제로 '시 한 편을 해석하고 감상 발표하기'라는 과제가 있었다. 시를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던 나는 당시 푹 빠져있던 여러 작품을 두고 한참 고심했고, 이윽고 상단의 작품을 선택했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선택 이유는 마지막 구절이었다.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던 생이었으나, 단 한 번도 가장 중요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시구에서 느껴지는 정체 모를 슬픔에 나는 매료된 것이었다.

과제를 하며 찾아본 다양한 해석들은 공통적으로 이 시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젊은 날의 탄식과 반성을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 젊은 날의 탄식이라. 열일곱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정서였다.

나는 꾸준히 기형도 시인을 탐구하고, 참고서를 뒤지며 시를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도통 왜 질투가 힘이 되는지, 왜 희망의 내용이 질투뿐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과제가 끝날 때까지 나는 정서의 이해가 아니라 표현의 미학에만 기대어 시를 읽어냈다. 이러한 미완의 감상을 가진 채, '질투는 나의 힘'은 내 고등학교 한 계절을 지배했다가 서서히 기억의 지평선을 넘어갔다.

이 아름답고도 모호한 시가 다시금 나에게 떠오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한순간 극적으로 떠오른 회상은 아니었다. 시작은 매일 아침 읽는 뉴스에서 불어닥친 한기였다. 추운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서슬 퍼런 뉴스들은 내 피부에 보이지 않는 건선을 돋우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에는 새로운 미국의 대통령이 가자지구의 주민들을 다른 나라로 이주시키고, 가자지구를 미국이 소유한 후에 이를 지중해 휴양지로 개발할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오래 곪은 분쟁을 금권주의적으로만 접근한 그 뉴스가 불편해 다른 창을 열었다.

이번에는 끝없이 미뤄지는 쪽방촌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주민들의 주거 불안정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뉴스가 휴대폰을 타고 넘어와 나를 압도했다. 이처럼, 현 사회의 뉴스들은 과하게 비인도적이었고, 나는 그것을 끔찍하게 느꼈다.

사실 사회는 냉담해진 지 오래였다. 다수의 현대인은 타인의 문제에 관여했을 때 발생하는 손해(그것이 '배려'라 불릴지라도)를 피할 수 있는 방관을 선호한다. 이에 더해 과거, 미래 세대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의 융합을 꾀하기보다는 당장 받을 수 있는 혜택만을 가늠하여 움직인다.

또한 어떤 이들은 실리적이라는 이유로 배우고 싶은 전공을 애써 포기하고 취업에 유리한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이런 물질주의적 경향은 쌓이고 굳어져 우울한 뉴스를 방출하는 지금의 사회를 형성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살고 싶어서 그러겠느냐, 사회가 우릴 이렇게 만든 것이다, 라고 반박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내 옆의 이웃과 비슷한 수준의 삶을 영위하길 바라고, 팍팍한 사회에서 이를 실현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가 드니까. 그러나 나는 이 당연한 과정에 위화감을 느꼈다. 우리가 사회에 투입하는 수고들의 결값이 보편적인 수준의 삶은 되겠으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꼭 '어떻게 행복해질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다수에게 편승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위화감은 거기까지였다. 세상은 이런 곳인가 보다, 하는 수긍, 그리고 나는 다르니까, 라는 우월감, 그게 끝이었다. 그렇게 순순히 위화감에 순응한 내가 사랑하던 시를 기어코 꺼내든 것은 올 초였다.

나에게는 참 존경하던 사람이 있었다. 내가 꿈꾸던 일을 독보적으로 해내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그를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발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싹 틔운 생각으로,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나씩 시작했다.

동시에 그 사람과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될수록 내가 얼마나 더 그에게 많이 배울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고, 더욱 그를 선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로 그 관계는 깨졌고 나는 그에게 크게 상처받았다.

그때 나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못났던 것은 그 사람이니까, 나는 빛나야 했다. 이를 원동력으로 나는 바쁜 2024년을 보냈다. 'AI 시대'에 편승하기 위해 열심히 코딩 강의를 듣고 디지털 헬스케어 행사를 다녔다. 갑작스러운 휴학에도 열정을 잃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랩실을 다니다가 난생처음 보는 분야를 배워보기도 했다.

그래, 분명 이 과정들은 나에게 흔적을 남겼다. 나는 즐겁게 배웠고, 신나게 탐색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이 정도면 나, 다른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고 '열정적인 의대생'으로 멋지게 살고 있구나, 하고. 그러나 신년이 되어 우연한 자리에서 그 사람을 마주한 순간 내 안도는 위선의 탈을 벗고 추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는 작년보다 더욱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멋졌다. 내가 여기저기 찍어댄 흐린 족적이 아니라, 내가 소망했던 진짜 열정을 가지고 그에 따른 성과를 일군 모습이었다. 분명 과거의 나는 그 사람보다 더 나았으므로 현재의 나도 그 사람보다 멋있어야 했는데, 무언가 놓친 기분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내가 작년에 새로운 배움에서 느꼈던 희열을 복기하려고 애썼다. 새 분야를 헤매인 만큼 그들은 나의 것이 되었던가? 내가 얻길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나 자문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은 '안도'라는 탈을 쓴 '인정욕구'였다. 나는 전혀 멋지지 않았다. 그 순간 '다수에게 편승한 행복'을 남의 것으로 간주했던 기억이 살아나 나를 찔렀다.

나는 내가 업신여겼던 불행한 현대인이었다. 나를 움직인 것은 스스로를 사랑해서 디딘 발걸음이 아니라 타인을 좇은 질투 어린 뜀박질이었다. 내가 작년에 얻은 것은 구질한 인정욕구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질투는 나의 힘'을 이해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지칠 줄 모르고 공중을 쏘다녔으나, 결국 자기만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타인을 향한 질투만이 남아버린 기형도 시인의 슬픔은 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저 안타까웠던 시의 정체 모를 슬픔은 이제 나의 것이 되어 내 시야를 부옇게 흐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시를 한참 끌어안고 슬픔 속에 침잠해 있었다. 그러나 곧 이 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나의 것이라고 인정한 불행을 타파할 방법을 궁리해야 했고, 어떻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무작정 책을 읽어치웠다. 나처럼 슬픔을 느낀 사람, 동시에 고뇌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정처 없는 탐독 끝에 마주한 이는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었다.

나의 슬픔을 해결할 실마리가 담긴 에리히 프롬의 저서는 <소유냐 존재냐>이다. 이 책에서 에리히 프롬은 인간을 '소유적 실존양식'과 '존재적 실존양식', 두 종류로 나누어 구분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이란,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지에 의해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다.

친구, 애인과 같은 인간관계, 건강, 심지어 '자아'마저 소유하고자 하는 이 방식은, 스스로의 육체, 사회적 지위, 지식을 포함한 자산, 그리고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은 이미지를 가지려 노력한다. 이렇게 '소유물'로부터 자아를 확인하는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누구나 부러워하는 국내 판매량 1위의 외제차를 소유함으로써 '좋은 차를 타는 나'라는 자아가 실존하게 되는 양식이다.

'존재적 실존양식'은 정확히 반대되는 어순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양식은 우리 자신, 총체적인 나로부터 모든 경험이 시작되는 양식이다. 하고 싶은 것을 능동적으로 인식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자유롭게 관계를 맺고 행동한다. 즉, '나'라는 자아가 원하는 것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경험들로 삶을 꾸리는 것이다.

다시 차의 예시로 설명하자면, 가솔린차의 탄소 배출량이 자신의 친환경적인 가치관에 반한다고 생각하여 전기차를 구입하는 행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함으로써 실존하는 양식이다. 프롬은 인간이 '존재적 실존양식'을 택할 때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이상적인 사회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프롬의 견해는 언뜻 보기에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 현 사회는 '소유'로 만연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적 재화 인정을 기본 원리로 하여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적 실존양식을 버리라는 주장은 경쟁력 없는 말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에 대한 고민 없이, 남들보다 더 가지려는 '소유'를 통해 남들의 시선으로 규정되는 삶이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는가? 쓰라린 일이지만, 나의 경우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정욕구를 충족하고 열정이라는 이미지를 소유함으로써 실존하려고 애썼으나, 이내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존재 의미를 가져다줄 수 없음을 뼈아프게 느꼈다. 허울뿐인 인정을 사고자 타인들이 유의미하다고 판단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움직이고 싶은지 물어야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질문의 변화는 나에게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한랭한 위화감이 현대인을 덮치는 현재, 이 질문은 당신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외부의 목소리가 들리는 창을 잠시 닫아두고 생각해 보자. 비인도적 뉴스는 결국 남의 일이므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정녕 없는가?

당장 물질적인 이득이 없으므로, 미래 세대의 안녕을 고민하는 일은 아무 쓸모가 없는가? 나의 꿈과 지적 욕망을 좇는 일은 타인의 인정과 사회적 안정을 버려가면서까지 추구할 가치가 없는 행위인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소유적 실존양식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냉담하게 바라보던 뉴스가 언젠가 우리에게 잔혹한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세대 간의 배려와 화합'이 후에는 나의 소중한 부모에게, 자식에게 절실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외면한 나의 꿈이 평생의 후회로 남아 나를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처럼 서로 착취하고 질투하며 당장의 편의만을 생각할 때, 불행의 돌림노래 같은 사회는 실현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질문이 필요하다. '무엇을 소유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이 질문이 멀리 퍼지고 반복된다면, 사람들이 '물질의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능동적인 행동이 되어 점점 더 널리 퍼져나가면, 결국 사회 전체가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갈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는 도서 출판을 주제로 한 온라인 강의를 들으러 간다. 당장 이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망하다 판단되는 역량을 키워준다거나, 누군가가 대단한 일이라고 박수쳐 줄 만한 과제는 아니다. 그저 나의 연인을 위한 일이다. 언젠가 책을 출판해보고 싶은 '나'라는 존재에게, 관심 있는 일에 열정을 태워보고 싶은 '나'라는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행동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사랑만으로도 나는 강의를 듣는 한 시간 동안 행복해진다. 앞으로도 나는 자주, 시간을 내어 나의 연인을 돌아보고 대화해보려 한다. 타인에 대한 질투를 동력으로 하는 기형적인 전진을 하지 않기 위해.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조금씩 스스로를 더 사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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