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잘 안다?'와 '알다가도 모르는 게 나다?'
어떤 말이 맞을까?
둘 다 완전치 않다. 그렇다고 둘 다 틀리다고 말할 수도 없다.
여러 책으로 낯설지 않은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님의 말이다.
".....젊은이들은 곧잘 '자기 찾기'라는 말을 씁니다. '나'는 벽장을 열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자기 찾기'란 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그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성공하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모임의 총무를 맡고 의외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 때, '내게도 리더의 자격이 있었구나!' 하며 숨겨진 나의 모습을 깨달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수녀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도 그동안 '벽장'을 열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어릴 적부터 최근까지 검사란 검사는 다 해봤다.
IQ 검사, 적성 검사, Big5 검사, MBTI 검사, DISC, PI, 애니어그램, Strengths Finder, TBPE...
이 검사만 하면 '벽장' 안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번번이 '장님 코끼리 더듬기'였다.
이런 테스트 저런 테스트로는 '벽장' 안에 빛이 닿는 부분만 어렴풋이 보였다.
그런 테스트들은 '참고' 정도다.
어떻게 4개의 패턴, 5개의 패턴, 9개의 패턴, 16개의 패턴, 34개의 패턴으로 90억 명을 파악하겠는가?
어떻게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고, 엄청난 가능성과 다양성을 가진 사람을 몇 개의 카테고리에 넣어 파악할 수 있는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인 인간은 사람이 무지하게 복잡하다는 것을 안다.
새로 만날 때마다 파악하기 싫어서 그런 패턴들을 만들어 놓고 억지로 끼워 맞춘다.
이런 테스트를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란 속담이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겪어'란 1) 나와 그가 함께 2) 그 상황(일, 사건 등)을 3) 일정 기간 동안 같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겪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 어때?"라고 그 사람과 일정 기간을 함께 생활했던 사람에게 묻는다.
이게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다.
한 사람에게만 묻지 않는다.
상하좌우 360도로 같이 살았던, 같이 놀았던,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들에게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그는 어떤 행동을 했던 사람인가?'이다.
같이 살았던 사람에게 물으면 정확하게 얘기할까?
묻는 이에 따라 다르게 대답할 확률이 높다.
같이 놀았던 사람에게 물으면 정확하게 얘기할까?
즐거울 때를 함께한 친구이니 한 면만 볼 가능성이 높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물으면 정확하게 얘기할까?
어려운 일을 함께했을수록 좀 더 객관적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같이 일을 해봐야 제대로 압니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만 가지고는 알지 못합니다."
외국계 제약사로 자리를 옮긴 전 직장 동료의 말이다.
일을 같이 해보면 드러나는 것이 많다.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을 우선하는지?
일에 몰입하는지 않는지?
정보를 제때 공유하는지 않는지?
역량이 있는지 없는지?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공을 가로채지 않는지?
인간관계 네트워크는 두툼한지 얇은지?
실수가 발생하거나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같이 일해보는 것"이다.
이누이트족의 속담처럼 "얼음이 녹을 때까지는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지 모른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황정민)과 친구(오달수) 정도 되면 60여 년을 함께 살아왔으니,
'그 사람 잘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에게 묻는 것이 앞서 말한 테스트들보다 훨씬 '그 사람'에 가깝기 때문이다.
타인을 안다는 것이 1) 직접 그와 같이 2) 어려운 일을 3) 일정 기간 동안 해봐야 그를 안다는 것이 맞다면,
'나'를 아는 것도 그냥 몇 개의 테스트보다는 무엇을 경험해 봐야 아는 것 아닌가?
나도 어떤 일을 직접 해봐야 "아!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를 알게 된다.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완벽하게 나를 알 수 없지만,
평생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상황에서 그때그때 대처하는 '벽장 속 숨겨져 있던 나'를 만난다.
옛 어른들이 경험, 경험을 강조하는 이유와 학자들이 경험론을 강조하는 이유가 같다.
" '자기 찾기'란 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입니다."라는 수녀님 말씀처럼
나를 안다는 것은 '장님 코끼리 더듬기'이고 '평생 알아가는 과정'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패턴을 아는 것이 재미는 있다.
나는 혈액형이 "A형"이다... 그러면 떠오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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