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고(長考) 끝에 의료개혁특별위원회 2차 실행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1차 실행방안 발표 후 연내 2차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예상보다 장기화되는 의정갈등 및 이해관계자들의 첨예한 의견 대립 등으로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1차 실행방안이 전공의 수련체계 혁신,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 필수의료 수가 개선 등 시급한 현안 중심의 개혁과제를 제시했다면, 이번 2차 실행방안은 첨예한 이해 갈등, 다양한 쟁점 속 지체된 구조 개혁과제를 구체화했다.
▲지역의료 강화 및 전달체계 정상화를 위한 지역 2차 병원 육성 및 일차의료 강화 ▲공정 보상 확립을 위한 비급여 적정 관리 및 실손보험의 합리적 개선 ▲환자-의료진 모두 신뢰하는 의료사고안전망 구축 등 3대 구조 개혁이 주축이다.
방대한 의료개혁 정책 중 개원가가 주의 깊게 봐야 할 내용을 메디칼타임즈가 정리해 봤다.
■ '가치 기반' 지불제 도입…만성질환 저평가 우려
정부는 의원급 진료의 통합·지속적 관리를 위해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원가가 질환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지속적 진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건강 개선 정도, 환자 만족도 등을 평가해 성과 보상을 지급할 계획이다.
우선 일차의료 수요 및 수행 가능성이 높은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시작한 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이와 함께 특정과목 중심 의원은 입원‧수술 서비스 수준 등을 질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기반한 차등 지원 방안을 마련하여 환자 안전 및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도모한다.
기능별로 평가 대상 및 기관을 구분하고, 해당 기능에 적합한 평가방식으로 세분화해 유형과 기능에 따른 공정한 성과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가치 기반 지불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개원가는 정당한 진료에도 성과가 없는 경우 보상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만성질환 관리 시 고혈압이 조절되지 앟으면 수가에 불이익을 입게 되는 경우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주치의 제도가 없이 행위별 수가제가 정착한 국내 의료환경에서 가치기반 지불제도가 잘 자리잡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잘못된 정책으로 개원가에 타격이 생긴다면 일차의료 자체가 흔들려 큰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수가는 수가대로 현실화하면서, 가치 기반 지불제는 추가로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방향이라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행위별수가는 진료량에 기반해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고, 시급성을 요하는 필수의료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이는 필수의료 수가가 낮게 평가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필수의료 강화, 기관별 추가적 성과보상 등에 2028년까지 20조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로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며 "아울러 수가 현실화는 별도로 진행 중으로 과학적 원가보상에 기반해 2028년까지 저수가 구조 완전 퇴출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 관리급여 본인부담 95% 신설 및 실손보험 상품 개편
2차 실행방안에 담긴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편 내용은 발표 전부터 의료계에서 거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는 급여화를 추진하면서, 과잉우려 비급여에 대해서는 가격 및 진료기준 등 관리체계를 신설하면서 제한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선별급여 내 '관리급여' 항목을 신설해 가격과 진료기준을 설정하고 일반적 급여와 달리 95%의 본인부담률을 적용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또한 통합적 비급여 관리를 위해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 산재한 법 규정을 재정비하고, 비급여 진료비를 포함한 진료비 전체를 고려한 환산지수 산출방식 개편을 검토할 방침이다.
정부는 "합리적 가격과 진료기준을 설정함에 따라 환자들이 관리급여 항목을 의학적 안전성‧효과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적정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동시에 적정 보장을 위한 실손보험 상품 구조를 개편한다. 중증도에 적합한 의료기관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실손보험(4세대 기준)에 가입했더라도 자기부담률을 인상한다는 방침이다.
이 외에도 기존 4세대 실손보험은 단일한 비급여 보장 특약만을 제공했으나, 이번 개혁을 통해 비급여에 대해 중증/비중증 특약을 구분해 가입자가 비급여 보장 여부뿐만 아니라 비급여 보장범위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는 중증/비중증 비급여 특약 각각의 손해율에 따라 보험료가 조정되어 보험가입자는 보험료 수준, 건강상태, 의료이용 성향 등에 따라 비급여 중증/비중증 특약 가입여부를 선택하고 보험료 부담을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의 비급여 관리가 자유 시장의 영역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며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비급여를 제한하기 전에 왜 의사들이 비급여 진료에 집중하게 됐는지 원인은 먼저 분석하고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원가 이하의 수가체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비급여를 막는다 해도 의사들은 또 다른 수입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비급여 팽창'의 원인을 의사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급격하게 실손보험을 개편하면 보험사들의 압박에 의료진은 진료할 때 위축되고 환자 역시 필요한 치료를 선택하지 못하게 될 우려가 크다"며 "섣부른 관리급여 선별 역시 환자가 의료비 부담으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사회적으로 더 큰 비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정부는 정책은 방향성을 제시했을 뿐 시행 과정에서 세부적 내용은 의료계와 협의를 통해 진행할 것이라 해명했다.
복지부 조우경 필수의료총괄과장은 "관리급여는 절대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할 예정으로 시행 과정에서 불합리한 부분 역시 지속적으로 미세 조정해 나갈 계획"이라며 "모든 비급여 진료에 대한 전면적 통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손보험 개혁 또한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 및 의료체계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며 "대책 시행 과정에서 가입자 권익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의료계, 환자‧소비자 등과 충분히 논의하면서 구체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의료기관 개설자 책임보험 의무가입…연간 보험료 수백만원?
의료사고안전망 구축을 위해 모든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정책에 대한 관심 또한 높다.
정부는 모든 의료기관 개설자를 대상으로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를 통해 고액 배상에서 필수의료 종사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한 재원 확보, 국가의 공적 지원‧관리가 가능한 배상체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민간보험 및 공제회 중심의 의료사고 배상체계는 전문적 위험평가체계 및 고액 배상 보장 부족으로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실제 대한의사협회가 운영하는 의료배상공제조합은 지난 1990년대 가입률이 50% 이상이었지만, 2005년 18%까지 떨어지고 현재 33% 내외로 추정된다. 전체 의료사고 배상액 중 책임보험·공제를 통한 배상 규모는 약 20~30% 수준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의료기관별 합리적 보험료율 산정체계를 구축하여 저위험-고위험 진료과 간 보험료율 격차를 평준화하고 중증·응급 등 고위험 필수진료는 고액 배상도 보장하는 특별배상 기능을 부여할 방침이다.
하지만 의료계 일부에서는 정부가 모든 의료기관에 책임보험 가입을 강제화함으로써 매년 수백만원 상당의 높은 보험금을 부담해야 하는 반면 실제 지원받는 금액은 배상액의 20%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보험료 부담은 낮추고 신속하고 충분하게 배상하여 배상 부담을 대폭 낮추는 것이 배상체계 혁신 방향"이라며 "이러한 방향에 따라 상품 설계 연구를 진행 중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보험료와 배상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면 규모의 경제에 따라 보험‧공제료 부담은 대폭 줄어들게 될 뿐 아니라 개인이 아닌 기관이 보험‧공제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료진의 배상 부담이 완화된다"며 "이에 더해 의무 보험이기 때문에 국가의 재정적 지원 역시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간보험이나 공제조합 모두 국가의 공적인 관리 및 지원 아래 진행되기 때문에 민사 배상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로 바뀔 것"이라며 "영국, 스웨덴, 핀란드는 모든 기관, 독일의 경우 모든 의원, 일본은 모든 의사회 회원에 대해 의무 가입을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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