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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된 의학교육" "교수-학생 신뢰 붕괴, 타버린 땅"

발행날짜: 2025-03-24 19:40:02

의협 의정연 포럼 열고 의대 증원 여파 의학교육 문제점 조명
의대생 돌아와도 교육 정상화 요원…전공의·의대생이 본 해법은

주요 의대가 미복학 학생에 대한 제적을 예고하면서 의정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대 교수와 학생, 전공의 모두 현 사태로 인한 상호 간 신뢰 붕괴를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24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의 문제' 포럼을 열고, 의대 증원으로 인해 생긴 의학교육의 문제점과 현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논의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포럼을 열고 의대 증원으로 인해 생긴 의학교육의 문제점과 현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논의했다.

고려대학교 의대 이영미 교수(의학교육교실)는 주제발표를 통해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의학교육이 누더기가 됐다고 비유했다. 수십 년간 축적해온 의료의 역량 기반 교육 체계가 쓰나미처럼 쓸려나갔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대는 일반 대학과 달리 명확한 교육 목표를 가진 목적형 교육기관이라고 말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선 졸업생 전원이 환자 중심의 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최소 역량을 갖춰야 하고, 의학교육은 이를 위해 설계됐다는 것. 이는 단순한 학문 습득을 넘어 실무 능력과 태도, 전문직 정체성 등 총체적 역량을 성취하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독립적인 진료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커리큘럼을 이수하게 되며, 이후 전공의 수련과 지속적인 평생학습 체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의학교육이 예과, 본과, 전공의, 전문의 이후 단계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게 된 이유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의대는 '역량 바탕 교육'을 근간으로 한 교육과정을 운영해왔다고 전했다. 이는 학생들의 성과에 대한 표준화를 유지하면서 학습 과정은 개별화하는 체계다. ▲이론과 실무를 통합한 교육 ▲환자 중심 진료를 위한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적 이해 역량 ▲다학제 협업 능력 등을 배양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 직접적인 충격을 줬다는 것. 학생 수는 급격히 증가한 반면, 교수 인력과 교육 인프라는 사실상 제자리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의학교육은 시뮬레이션 기반 실습 등 도제식 소집단 교육을 목표로 발전해왔지만, 사실상 과거의 다대일 대규모 강의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교육 체계의 붕괴가 학습자와 교수, 교육과정 사이의 신뢰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학생들은 교육기관과 교수진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고, 사회는 의료인 집단 전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

이에 더해 최근 몇 년간 주요 임상과 기피 현상, 수도권 쏠림, 전공의 유출 등의 문제가 누적되며 의학교육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라는 우려다.

이 교수는 이런 상황이 의학교육이 지향해온 '좋은 의사 양성'이라는 목표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의대생과 전공의는 의학교육의 기초이자 핵심이지만, 이들이 현장을 이탈해 교육 시스템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학습자 중심 교육 ▲자기주도적 탐구 환경 ▲교수와 학생 간 협력 구조 등 사회가 요구하는 의료인 역량에 맞춘 학습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의학교육 전반이 후퇴할 뿐이라는 진단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 학생들이 의대생이라는 말을 못 하고 다닐 정도였다. 사회가 그만큼 의사를 적대시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좋은 의사'를 만든다는 것은 허구에 가깝다"며 "지난 30년간 의료 선진국 수준의 의학교육을 구축하기 위해 교수, 학생 모두 피땀 흘려왔다. 지금은 교육 현장이 쓰나미를 맞은 듯, 누더기가 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울면서 교육해온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전쟁 직후의 폐허 같다. 의대생과 전공의는 의학교육의 주춧돌이자 캡스톤이다"라며 "하지만 지금 이들은 학교와 병원에 없다.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30년간 쌓아온 의학교육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얼마나 걸릴지, 회복이 가능할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고려대학교 의대 의학교육교실 이영미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의학교육이 누더기가 됐다고 비유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 충북의대 채희복 교수는 늘어난 의대생을 제대로 교육하기 어려운 현장 상황을 전했다. 학생 수 증가에 따른 교육 공간 부족, 실습 병상 한계, 기초의학 교수 인력 부족 등이 겹치면서 기존 교육 시스템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우려다.

특히 충북의대는 기존 49명 정원에서 125명으로 증원됐지만, 1학년 강의실은 60석에 불과하고 전공의 수련병원은 포화 상태라는 설명이다. 이에 충북의대는 지난 2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평가에서 '불인증 유예' 판정을 받는 등 내년도 정원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전공의를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실제 충북대병원은 인턴 부족으로 전공의 지원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데, 외과 전공의는 매년 1명 수준에 불과하고, 흉부외과는 20년째 지원자가 전무하다는 우려다.

더욱이 대학을 졸업한 학생의 다수가 수도권 출신으로, 인턴 수련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서울로 이동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채 교수는 이런 인력 부족은 병원의 운영과 필수 진료 유지에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외과계 교수들이 외래·수술·응급 당직까지 병행하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고, 수술 장비나 보조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자도 감소세다. 지방 암 환자의 약 30~40%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이동하며, 지방 병원은 치료가 어려운 환자나 고령, 저소득층 환자 위주로 남게 된다.

▲지방 의료에 대한 신뢰 저하 ▲교통 인프라 개선 ▲수도권 대형병원의 무제한 병상 확대 등이 지역 의료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 특히 청주에서 서울까지 KTX로 5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중증 질환 치료를 위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환자들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채 교수는 관련 대책으로 의대 정원이 아닌 전공의 TO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증 진료가 기피되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만 늘린다면, 필수 진료과가 아닌 개원의 중심의 일반 진료로 인력이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공공의료기관 확대와 형사 면책 제도 도입 등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필수 의료 분야의 인력 유입은 어렵다는 것. 또 관련 예시로 낮은 수가로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가 전국적으로 급격히 줄어든 상황을 조명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의 이유로 의료 공공성 회복과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들고 있지만 ▲전공의 수련 체계 확충 ▲기초의학 인력 확보 ▲교육 인프라 개선 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제언이다.

채 교수는 "전공의부터 확보하지 않으면 늘어난 의대생은 동네의원 일반의로 나갈 뿐이다.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전문의 양성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며 "필수의료 기피의 가장 큰 원인은 고위험·저보상 구조다. 응급·내과계·외과계는 야간·주말 근무가 필수고, 소송 위험도 높다. 환자가 많아질수록 위험성이 커지는데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선의의 의료 행위까지 형사책임을 묻는 건 지나치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려다 처벌받는 구조에선 아무도 위험한 진료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이 시대 젊은 의사들에게 국가가 해야 할 것은 강제가 아니라 설득이다. 면허 갱신, 취업 제한 같은 억압적 접근은 오히려 필수 의료 인력을 더 멀어지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충북의대 채희복 교수는 늘어난 정원으로 의대생을 제대로 교육하기 어려운 현장 상황을 전했다.

서울대병원 장재영 사직 전공의는 현 상황을 "이미 타버린 땅"이라 표현하면서도 "그래도 누군가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며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는 현 사태의 가장 큰 문제로 신뢰 붕괴를 꼽았다. 의과대학은 직업 양성소이기 전에 사회화와 문화 전달의 공간이지만, 지금은 교수와 학생 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는 우려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정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 안에서 교육 공동체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판단이다.

실습 기반의 붕괴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 그가 4주간 산부인과 실습을 돌았을 당시, 한 번도 분만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심장 기형 수술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동기도 있는 등 팀 단위 실습에서 인원이 제한되면서 한두 명 외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실습 면허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봤다. 의대생도 진료에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실습의 법적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요구다.

실습 시기 유예도 필요하다고 봤다. 24학번과 25학번을 같은 교육과정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실습 시점을 분산시켜야 실질적인 경험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전공의 수련 연계 강화도 강조했다. 본인 역시 전공의가 되자마자 복수 천자를 하는 등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의대생이 전공의가 된 후 곧바로 진료해야 하는 등 교육과 수련 사이에 완충 작용을 할 전환기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의학교육의 내용적 개편도 요구했다. 국내 의과대학은 여전히 과목 중심, 단기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처럼 의사·환자 관계, 보건의료정책, 의료경제학 등 사회 기반 교육이 6년 내내 연속성을 가지고 이뤄져야 한다는 것.

장 사직전공의는 "교육은 숫자 게임이 아닙니다. 실습, 수련, 기초교육까지 이어지는 전체 흐름을 설계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깊은 불신과 문제가 닥칠 것"이라며 "의대생, 전공의, 교수 모두가 교육의 주체다. 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이 담아낼 때, 의학교육의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장재영 사직 전공의(왼쪽)와 휴학 의대생인 의협 강기범 정책이사는 의학교육을 개선할 대책을 조명했다.

휴학 의대생인 의협 강기범 정책이사 역시 '의학교육의 구조적 재설계'와 '기술 기반 생산성 제고'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학생 증원이 아닌 실습 가능 환경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지금처럼 실습생 수가 환자 수를 초과하는 현상은 지역의료 신뢰를 오히려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이와 함께 환자·보호자가 의학 실습의 목적과 이점을 알 수 있도록 홍보해 사회적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의학 전공자의 커리어 패스를 제시할 수 있는 인력 양성 구조 설계도 제시했다. 단순히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게 아니라, 미국처럼 생화학·생리학 등을 전공한 의과학자가 산업·연구·보건 정책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경로가 필요하다는 것.

정부의 의대 증원 근거인 의사 수 부족과 관련해선 AI 기반 의료로 생산성을 제고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기술 발전에 발맞춰 의료인력 양적 확충보다 생산성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또 이를 위해 AI를 활용한 의료정보 해석, 임상 판단 지원 시스템 등 기술 기반 교육을 선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지방의료 접근성 격차 해소 역시 기술이 중심이 돼야 하며, 규제 완화와 의료기관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를 의학교육과 융합해 미래 의료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AI·바이오 기술에 친숙한 전문가 양성 체계도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다.

강 정책이사는 "학생들은 단순히 증원된 강의실 안에 밀어 넣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실습 현장에선 전공의조차 정형화된 업무에 묶여 학생들의 접근을 꺼리는 분위기다. 실습생도 위축되고 교육의 질도 떨어진다"며 "의대 증원만으론 지역의료를 강화할 수 없다. 지방의대만 늘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접근은 오히려 지역 의료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방 의료의 붕괴는 인구 소멸과 연결된 문제다. 결국 의료인 숫자가 아니라,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로 접근해야 한다. 이제 기술을 받아들이고, 규제를 유연화해 진짜 국민 편익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며 "이런 구조여야 지역 진료권을 재구축할 수 있다. 기술과 융합된 의학 교육이야말로 미래 의료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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